<덕수궁 뒤 중명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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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가다 옛 MBC 건물쪽으로 걷다보면 오른편 외벽에 흰색칠을 한 2층짜리 구식 양옥이 눈에 띈다.
이 건물이 1905년 굴욕적인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됐던 중명전(중명전) .
1900년경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건물은 원래 덕수궁 경내에 있었던 궁궐 내 최초의 순양식 건물이었으나 도로가 생기면서 궁 밖의 현재 위치로 내다 앉게 됐다.
조약 체결 당시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일인들은 압력을 행사해 이 건물에서 외교권 이양 문제를 논의하는 어전 회의를 열도록 하는데는 성공했으나 반나절이나 시간을 끌자 일본현병 3O명을 동원, 회의장으로 침입했다.
일본 헌병의 총검 위협 속에 모였던 대신 8명에게 한사람씩 가부 결정을 강요, 이중 이완용을 비롯한 5명이 적극 찬성해 조약이 체결됐다.
이 같은 비운의 장소임에도 불구, 이후 왕족들이 외국 사신 연회장소로 즐겨 이용했고 1925년엔 화재로 소실되기도 했으나 곧 원형대로 재건됐다.
서울시 유형 문화재로 지정돼 있기만할 뿐 별도의 안내판이나 홍보가 전혀 없어 수많은 행인들의 무심한 발길이 굴욕의 역사를 지나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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