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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포의 밀입국 14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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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옌볜의 동포 車모(51.여)씨가 한국 밀항을 결심한 건 올초. 먼저 한국에 간 아들 朴모씨로부터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니 들어오라"는 소식을 듣고서였다.

한국 돈 1천만원을 내야 한다는 말에 여러 번 망설이기는 했지만 "가서 1년만 고생하면 본전은 나온다"는 주변의 말에 브로커에게 밀입국을 부탁했다.

출발 날짜는 5월 10일로 정해졌다. 그날 오후 車씨와 한 배를 타게 될 사람 43명이 옌볜에 모였다. 곧바로 2차 집결지인 선양으로 향했다. 열차를 바꿔 타며 12일 오전에야 도착했다.

일행은 선양의 폭력조직인 흑룡회 조직원들의 인솔로 다시 다롄으로 향했다. 한국행 배가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거기서 다시 나흘을 기다렸다. 한국에서 인계받으러 공해로 나올 배와 접선 날짜를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5월 18일 오전 3시 드디어 車씨는 흑룡회 조직원, 선원들과 함께 작은 목선에 올랐다. 다시 사흘 낮밤 바닷길을 달렸고 21일 오전 4시쯤 배가 멈췄다. "북위 37도, 동경1백23도 공해상"이라고 선원들이 설명해줬다. 잠시 후 조그만 불빛이 비쳤다. 한국에서 온 배였다. 車씨 일행은 차례로 그 배에 옮겨 탔다.

일행은 한국배로 갈아탄 뒤 곧바로 고기들을 채워놓는 어창(漁倉)으로 들어갔다. 해경 등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몇 년 전 한국으로 밀입국하던 일행이 배 안에서 무더기로 질식사했다는 얘기를 들은 탓에 긴장했지만 대부분 피로를 못 이기고 잠이 들었다. 40여시간을 항해해 도착한 곳은 충남 태안군 신진도. 이미 이들을 데리고 갈 한국 내 조직폭력배들이 마중나와 있었다.

밤새 달려 부산 사상구의 은신처에 도착한 건 23일 오전 6시. 미리 중국에서 돈을 내고 온 몇 사람은 곧바로 자유의 몸이 됐다. 하지만 대부분은 車씨를 데리고 온 조직원들이 '창고'라고 부르는 그 집에 감금됐다.

다행히 車씨는 도착한 날 밤 아들 朴씨가 돈을 들고 찾아와 지옥 같았던 14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서울로 향할 수 있었다. 그러나 車씨는 수도권의 한 공장에 취직해 일하던 중 이번 검찰의 단속에 적발돼 결국 추방되고 말았다.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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