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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조하리의 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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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억울해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자신은 진실을 말하는 데 사람들은 말의 앞뒤가 다르다고 단정짓고, 도무지 자신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사람도 늘고 있다.

최근 검찰이 정치자금.비자금.분식회계의 은밀하고도 음습한 거래 관행에 사정(司正)의 칼을 갖다 대면서 사회 전체가 의사소통의 혼조(混調)현상을 일으킨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누가 억울하고 누가 나쁜 사람인지 국민이 보기에는 명확한 것 같은데, 여전히 관계자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펄쩍뛰고, 왜 나만 가지고 닦달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하고, 돈주고 뺨맞는 나만 억울하다는 식의 호소들만 난무한다.

서로 다른 두 집단(혹은 사람)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 의미를 '정상적으로 주고받고 이해하는 과정'을 대화 혹은 의사소통이라고 말한다면, 분명 현재 우리 사회의 의사소통 과정은 문제가 있다.

왜 이런 현상들이 난무하는 것일까. 혹시라도 이번엔 "모두 발가벗고 고백하고 털고 가겠다"고 하면서도 '나의 것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남의 것은 드러내려 하고', '나의 것은 남들이 모를 것'이고, '남이 숨기는 내용은 대중이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아니면 혹시라도 이미 사정의 한계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일까.

'조하리의 창(窓)'(Johari window)이라는 말이 있다. 이에 따르면 의사소통의 심리구조는 네 영역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자신도 알고 상대도 알고 있는 '열린 창'(public)과 자신은 알고 있지만 상대에게는 숨기고 있는 '숨겨진 창'(private), 정작 자신은 모르지만 상대는 쉽게 관찰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창'(blind), 모두 알지 못하는 '암흑의 창'(unknown)의 영역이다.

한국인은 전통적으로 사적인 영역(숨겨진 창)이 강한 문화구조에서 살아왔다. 소문과 남의 행동에는 관심을 최대한 집중시키면서도 자신과 내부 집단의 행동과 내막에 대해선 가급적 노출시키지 않는 문화가 강했다. 이렇게 보면 현재 분출하고 있는 '고백 후 사면'이라는 해법은 우리 전통에선 매우 생소한 대화법이다. 소통의 혼조와 억울함증을 치료하기 위해선 '창'의 개방성을 넓혀야 한다. 하지만 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할까.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