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마을] 눈물의 눈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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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남편은 환한 얼굴로 집을 나섰다. 나도 무척 들뜬 마음으로 남편의 퇴근을 기다렸다. 하지만 밤 늦도록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밀린 월급도 받았겠다 동료들과 술 한잔 하는 걸까, 오는 길에 돈을 잃어버렸나, 아니면 오늘도 월급을 못 받은 건가…. 눈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며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남편은 새벽에야 돌아왔다. 얼마나 마셔댔는지 술 냄새가 진동했다. 주정처럼 내뱉는 말을 정리해보니 결제를 못 받아 속상한 마음에 동료들과 소주만 마셔댔다는 것이었다. 삼겹살을 먹는데 집에 있는 내 생각에 고기가 목에 걸려 소주만 마셨다고도 했다. 평소 말 없고 자존심 강한 남편의 더없이 초췌한 모습에 난 차마 싫은 소리를 할 수 없어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며 위로했다. 그런데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편이 잠깐 보여줄 게 있다며 나를 끌고 밖으로 나가는 거였다. 골목까지 간 나는 깜짝 놀랐다. 거기 남편이 만들었음직한 커다란 눈사람이 벙글벙글 웃고 서 있는 게 아닌가. 비틀거리며 아주 오랜 시간 눈을 굴렸을 남편 생각에 그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며칠, 골목 앞에 든든히 서서 나와 배 속의 아이를 지켜주는 든든한 보초병이 있어 너무도 행복했다.

김미옥 (40세.주부.인천시 효성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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