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 안 지키면서 비리 욕할 자격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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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복잡하고 다양한 삶을 영위해 가는 현실에서 스스로 지키며 자제하면서 생활하는 자율적인 삶과 타인의 규제와 눈치를 보면서 살아가는 삶의 차이는 엄청나게 다른 것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국민전체의 의식수준을 가늠하는 의미에서도 자율과 타율의 차이는 엄연하다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6·29의 민주화 물결을 타고 타율의 규제가 풀리는가 싶더니 모든 사람들이 제목소리를 내면서 가장 기본적인 거리질서 공중도덕 의식마저 희미하게 되었고 급기야 이번에 정부에서는 또 지도단속이라는 카드를 내놓았다.
「우리나라 사람은 스스로는 안돼」하는 패배주의적 생각이 들기에 앞서 꼭 타율에 의해서 가장 기본적인 것마저도 규제를 받으면서 생활해야 하는가 하는 서글픈 생각이 앞선다. 자신의 생명 띠 역할을 하는 안전띠마저도 단속, 그리고 벌금이라는 수순을 거쳐 이제야 겨우 정착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또 거리질서 단속이 실시되면 얼마동안은 휴지나 껌·담배꽁초가 휴지통에 버려질 것이고 승 강 대 줄서기 등도 잘될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의식 문체가 선결되지 않는 한은 결코 그것이 정착될 수 없다.
얼마 전 부정입학에 관련된 교수나 정치인·기업인들의 부도덕성과 파렴치한 행위에 대하여 분노하며 매서운 눈초리로 쳐다보던 우리들은 이제 한번쯤 스스로를 돌이켜봐야 한다. 과연 나 자신은 가장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공중도덕 하나라도 지키면서 생활하고 있는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을 들추어내기에 앞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국민의식이라면 지도층 비리를 말할 자격이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스스로 지키며 자제하고 절제하는 생활 속에서 건강한 국민정신이 싹틀 것이고 그러한 국민의식이 충만할 때 정치인이나 기업인의 도덕성을 문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제서 야 정치인들도 진실로 국민들의 눈길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박형근<부산시 남구 민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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