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서 이기지 못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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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19일 처음으로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있다는 걸 시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육군과 해병대 병력을 증원할 뜻을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아직도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피터 페이스 합참의장이 쓰는 재미있는 문구가 있는데 그건 '우리는 이기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지지도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부시 대통령의 입에서 '이기지 못한다(not winning)'는 말이 나온 건 처음이다.

그는 10월 25일 기자회견에선 "완전히(absolutely) 이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따지는 질문이 나오자 부시 대통령은 "그땐 상황 평가가 아닌 예상을 말한 것이었다.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밝힌 것"이라고 대꾸했다. 그는 이어 "이라크엔 매우 긍정적인 진전이 있다. 민주주의가 싹트고 있다는 건 주목할 만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 "육군과 해병대 증원하겠다"=부시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우리가 치르고 있는 이데올로기 전쟁(이슬람 극단주의자와 테러와의 전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며 "평화를 성취하기 위해선 육군과 해병대 전체 병력의 증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로버트 게이츠 신임 국방장관에게 이 문제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현재 육군은 50만7000여 명, 해병대는 18만여 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얼마나 늘릴 것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가 미군 증원을 지시한 것은 이라크에 14만 명, 아프가니스탄에 2만 명의 병력을 그대로 놔둔 채 다른 비상상황에 대비할 병력을 보강하겠다는 걸 뜻한다.

워싱턴 포스트 13일자는 유사시 미군이 투입될 수 있는 대상 지역으로 북한과 이란.대만을 꼽았다. 신문은 "당장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동원 가능한 육군과 해병대의 전투 병력은 4년 전의 절반밖에 안 된다"며 "육군과 해병대도 병력 증강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부시 대통령의 방침은 15일 퇴임한 도널드 럼즈펠드 전 장관의 생각과는 다른 것이다. 럼즈펠드는 그간 "첨단기술과 고도의 정보력을 갖춘 초현대식 군대가 머릿수가 많은 군대보다 낫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상.하원에선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군에 큰 손실이 발생하고 있으므로 병력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육군의 경우 일단 5000여 명을 늘리고, 그 뒤 매년 7000여 명씩 증원하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미 육군 병력은 1950년대 초 한국전쟁에 참전했을 때 160만 명까지 올라갔으나 냉전이 종식된 90년대 초엔 60만 명 이하로 떨어졌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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