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동독 예술품|『작품성』싸고 거센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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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89년의 베를린장벽 붕괴, 90년의 정치·경제적 통일에도 불구하고 구동서독 국민을 사이에는 여전히 두터운 심리적 장벽이 가로놓여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분단국가인우리에게도 시사하는바 클 뿐 아니라 40여 년 간의 분단 후 민족 동질성 회복이 지극히 힘든 작업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통일독일에서의 이 같은 현상은 구 동독 예술작품의 예술성에 대한 구 서독예술가·비평가의 비판이 높은데다 이에 맞선 구 동독 예술가들의 반론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데서 두드러 진다.
서독예술가들이 동독예술가들의 작품에 대해 내리는 비판은 45년 동안 공산주의 정권 하에서 당의 정치·문화노선에 따라 창작활동을 해 온 동독 예술가들의 작품이「참된 예술」인가 하는 점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공산주의 정권 하에서 동독예술가들은 당의 이데올로기 노선에 따라 창작활동을 수행해야 했다. 1959년 동독국가예술위원회를 설립하면서 초대수상 오토 그로테볼은『문학과 창작예술이 정치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1971년 에리히 호네커가 당 서기장에 취임하면서 예술에 대한 통제는 다소 완화됐으나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생활과 창작 및 전시활동 전반에 걸쳐 여전히 국가위원회의「배려」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적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예술가들은 가차없이 제거되었고 그들의 작품은 출판과 전시가 금지되었다. 몇몇 예술가들은 유형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독예술가들의 창작경향은 국가가 주장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노선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서독의 비판자들은 바로 이 점을 증시, 당의 정치적 노선에 따라 정치선전을 목적으로 하는 예술이 참된 예술이 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콜로뉴 현대박물관의 지크프리트 고어관장은『예술이 정치체제와 관련을 맺게 된다면 극약을 먹은 것과 마찬가지』라면서『공산주의정권이 정치선전을 목적으로 예술을 사용한 방식은 나치가 예술을 사용한 방식과 유사하다』고 동독예술을 혹평했다.
「아트」지의 편집장인 알프레트 엘티씨도『대부분의 서독예술가들은 동독의 공산주의정권 하에서 어떤「예술작품」이 만들어졌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과거에 동독예술작품이 서독시장에서 팔릴 수 있었던 것은 분단상황에서 동독작품들이 이국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말해 고어씨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심지어 서독예술가들은 동독예술가들이 국가로부터「귀족 대우」를 받았다는 점을 비난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자신의 몇몇 작품이 서독시장에서 10만 달러 이상의 가격으로 팔리는 등 극도의 유명세를 누리고 있는 동독의 저명한 화가 베른하르트 하이치히씨는 예술이 정치와 관련된다고 해서 참된 예술이 아니라는 서독예술가의 주장은 부당하다며 동독예술에 대한 온갖 비판들은『완전한 넌 센스』라고 반박한다. 하이치히씨는『스탈린 때문에 러시아의 예술이 없었다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면서『동독 예술작품들이 예술적인지 아닌지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라고 강변한다.
40여 년 동안 상이한 체제하에서 살아온 예술가들의 예술관이 하루 아침에 조화되기란 어려울 것이다. 몇몇 독일예술가들은 개방된 사회에서는 상이한 예술관들이 각각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이러한 예술관 대립이 화해됨으로써 진정한 독일민족의 통합·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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