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 고향/“호적 옮겨 지역감정 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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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서초구 대대적 운동 벌여/한달새 3백80가구 호응
서울 서초구청(구청장 황철민)이 망국적인 지역감정의 해소와 행정 간소화를 위해 호적을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곳으로 옮기자는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여 화제가 되고 있다.
1월21일부터 시작된 이 운동으로 한달여사이 서초구청 주민 3백80여가구가 호적을 옮겨오는등 커다란 호응을 받고 있고 곧 다른 구청에까지 파급될 움직임이다.
서초구청이 이같은 호적 옮겨 「서울사람 되기」운동을 시작한 것은 당초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을 고향으로 생각하고 애향심을 키워 지역발전을 이뤄 보자」는 취지에서였다.
『한국인들의 마음속에는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고향이 아니면 결국 타향이라는 의식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같은 사고방식은 지역발전에 장애요인이 되는 것은 물론 지역감정의 큰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서초구청 시민봉사실장 강대현씨(53)의 말.
한곳에 몇년간 살고 나면 그 고장사람임을 내세우는 외국과는 달리 우리의 경우 서울에서 수십년을 산 뒤에도 주민들 대부분이 「서울사람」이라기 보다는 전라도나 경상도·충청도 사람임을 고집하고 이같은 완고한 고향관은 곧바로 자신이 사는 곳에 대한 무관심과 무책임,그리고 그 이면에는 다른 지역사람들을 배척하는 지역감정으로 이어진다.
호적이 전국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 주민 당사자나 구청측이 겪게 되는 행정적인 불편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간단한 호적 등·초본이나 신원증명서를 발급받을 때에도 며칠씩 걸려 수십년전에 떠나온 「고향」으로 찾아가야 하고 우편발송제도가 있긴 하지만 밀려드는 서류발부 요청등 업무에 큰 지장을 받을 정도라는 것이 구청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서초구청의 경우 주민 10만5천여가구중 80%인 8만3천여가구가 다른곳에 호적을 두고 있고 그만큼 애향심보다는 뜨내기 의식이 강하다는 자체 분석이다.
구청측이 반상회외 통·반장 등을 통해 『호적을 현재 살고 있는 곳으로 옮겨 애향심을 키우고 행정 간소화와 지역감정 해소에 앞장서 달라』는 적극적인 홍보를 시작하면서 주민들의 호응은 예상보다 훨씬 높았다.
반상회에서 권유를 듣고 즉시 호적을 옮겼다는 민병훈씨(55·서울 반포동)는 『처음엔 고향을 등지는 것 같아 마음에 걸렸지만 취지에 공감해 결단을 내렸다. 호적을 옮기고 나니 편리할 뿐 아니라 이제 진짜 서울시민이 된 것 같고 새 고향이 된 셈인 우리구에 대한 애착도 커졌다』고 말했다.
고향이 광주인 유모씨(49)도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없애는데 솔선수범 한다는 생각에서 호적을 서울로 옮겼다』고 했다.
주민들의 호응에 고무된 구청측은 올해안에 1천가구를 목표로 호적옮기기 사업에 박차를 가할 계획.
그러나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어려움도 많다.
서울에 호적을 두고 있는 가구와 장남등 신분상의 이유로 인해 호적을 포기할 수 없는 가구를 제외하더라도 전체가구의 절반이상이 지금 사는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구청측의 설명이다.
운동은 이제 겨우 걸음마단계며 홍보 또한 반상회나 통·반장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고 있어 좀더 적극적인 홍보활동이 필요한 상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강대현 시민봉사실장은 『이제는 삭막한 서울을 우리들의 진정한 삶의 터전으로 닦아나가야 하며 더이상 타향이라는 의식속에 방치해 두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유광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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