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공백」우려 나토 접근/바르샤바조약군 해체후의 동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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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소,정치기구로 남기를 희망/체코·헝가리·폴란드등 안보협력 합의
전세계의 이목이 걸프전에 집중돼 있는 가운데 다른 한편으로 동유럽에서도 역사적 대변화가 일고 있다.
25일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선 바르샤바조약기구 6개국 외무·국방장관회의가 열려 동 기구의 군사조직을 다음달말까지 해체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지난 55년 창설이래 동·서냉전의 상징중 하나였던 바르샤바조약기구는 사실상 완전 해체된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바르샤바조약기구의 군사조직,즉 바르샤바조약군은 4백80만명의 대군으로 구성돼 서방측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에 맞서 동유럽 공산진영을 유지하는 방파제 역할을 해왔다.
바르샤바조약기구 붕괴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지난 89년 베를린장벽 붕괴와 뒤이어 연쇄적으로 일어났던 동유럽민주화혁명. 동유럽 각국 공산정권들이 차례로 무너지고 비공산 민주정부가 들어서면서 바르샤바조약기구는 더이상 존속될 수 없었다.
특히 지난해 11월 독일이 통일돼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중심적 존재였던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면서 바르샤바조약기구에서 탈퇴,그 붕괴를 더욱 가속화했다.
상황이 이에 이르자 일부 가맹국으로부터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성격변화 내지 궁극적으로 해체요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앞장선 것이 헝가리. 헝가리는 체코·폴란드 등과 함께 바르샤바조약기구의 근본적 개편 또는 완전 폐지를 목표로 공동전선을 폈다.
이에 대해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드디어 지난 12일 다음달 31일까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군사조직을 완전 폐지하기로 약속,이번 부다페스트회의에서 가맹국 전체 합의에 따라 군사조직을 폐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소련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완전 해체는 원치 않으며 정치기구로서 남아 있기를 바라고 있다.
이에 대해 헝가리등은 내년 3월까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완전 해체를 바라며,더 나아가 소련 주도의 경제협력기구인 코메콘(경제상호원조회의)마저도 해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동유럽국가들로선 바르샤바조약기구가 해체될 경우 소련의 압제에서 벗어난다는 일시적 기쁨은 있을지 몰라도 많은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바르샤바조약기구 해체로 인해 발생할 동유럽지역의 힘의 공백이다.
이 경우 최대의 위협은 역시 소련이며,특히 지금처럼 소련이 국내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있을때 더욱 불안하다. 따라서 동유럽국가들은 자신의 안보확보를 위해 부심하고 있다.
헝가리는 이달초 이웃 오스트리아와 군사협력협정 체결에 합의했으며,이미 체코·루마니아와도 이와 유사한 협정을 체결해 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열린 헝가리·체코·폴란드 3국 정상회담에선 협력추진을 위한 공동선언을 채택한 바 있다. 이 선언으로 이들 3국은 안전보장에 관해 서로 협력·협의하기로 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이들의 나토에 대한 접근시도다. 체코는 최근 나토에 대한 「관심」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으며,바츨라프 하벨 체코 대통령은 다음달 하순 브뤼셀 나토본부를 방문할 예정이다.
헝가리도 최근 나토의 자문기관인 북대서양 평의회에 준가맹 의사를 표시한 바 있다.
나토측은 동유럽국가들의 이같은 움직임을 환영하면서도 이들의 나토가맹에 대해서만은 극히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나토로서는 대소 관계를 고려,유럽전체의 안보구도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해체에 대해 소련 국내,특히 공산당·군부·보수파는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다.
소련 군부는 바르샤바조약기구가 해체됨으로써 소련의 안보가 위협받게 됐다고 크게 반발하고,소련군이 동유럽국가들로부터 철수하는 과정에서 받는 굴욕감,직업군인들의 사회 경제적 지위저하 등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이들은 이같은 상황의 책임을 개혁파의 잘못된 외교정책에 돌리고,개혁파에 대해 공격을 가하고 있다.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해체가 동유럽에는 신시대 도래의 역사적 사건인 반면 소련에선 보수파의 득세,구시대로의 역행이라는 정반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음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정우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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