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동철·새학기 「가면우울증」환자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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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입학 등 새학기를 앞두고, 또는 인사이동·입사·시험 등을 겪으면서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갑작스런 생활환경의 변화에 따른 스트레스로 생기는 이 같은 우울증은 매년 이맘때면 상당수의 사람들이 체험하는 것이지만 슬기롭게 극복해 내지 못하면 신경증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어 초기에 적절한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S사의 경리부차장으로 근무하는 박모씨(38)는 곧 닥쳐올 정기인사에 대한 소문으로 요즘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우리회사에 새로 계열사가 설립되는데 내가 그쪽으로 전보되리라는 소문을 얼마 전에 들었습니다. 그후로 잠도 오지 않고 어쩌다 자고 나도 몸이 개운치 않은 등 피로감이 쌓여 병원을 찾았더니 「가면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박씨의 경우처럼 우울증은 대개 정신적 고통과 신체적 이상을 동반한다. 한양대의대 김광일교수(신경정신과)는 『병의 본질은 우울증인데 겉으로는 신체에 이상이 있는 것같이 나타나는 가면우울증은 보통 3가지 형태로 발현된다』고 말했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불면증으로 잠자리에 들면 이생각 저생각이 떠오르며 잠이 오지 않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피로·두통·소화불량·허약감 등의 신체적 이상이 따르는 경우다. 청소년들의 경우는 부모말에 반발하고, 규칙을 깨는 등 문제행동을 일삼기도 한다.
김교수는 『우울증이 이 같은 신체적 증상을 동반하면 의사도 오진하기 쉽고, 본인은 물론 주변사람도 병으로 착각할 수 있다』며 『마음의 갈등을 밖으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이런 증상이 많이 나타난다』고 진단했다.
입사·입학·인사이동 등으로 인해 우울증을 겪는 사람은 대체로 극단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앙대의대 이길홍교수(신경정신과)는 『이기적 성격·책임과민증·외고집·마이홈주의·열등감 등을 가진 사람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힘이 들고 그만큼 우울증에 걸릴 확률도 높다』고 말했다.
이교수는 『생활환경의 변동으로 새사람을 사귀고, 새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조화를 위한 적응력이 필수적인데 참을성이 없고 배타적인 성격의 소유자에게는 환경변화가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오게 마련』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극단적 성격 중 공격적·경쟁적 측면이 강한 사람에게선 고혈압·당뇨·긴장성두통·심근경색 등이 자주 발견되고 의존적 욕구가 강하며, 나약한 사람들에게서는 위장관계·소화계통의 질병발생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차분히 현실을 인정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라고 이교수는 말했다. 『인사이동·입사 등으로 새 상사 혹은 부하·동료직원과 같이 일할 경우 자신과 성격이 맞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고 이들로부터 자신이 스트레스를 느끼고 그들을 싫어하면, 자신의 이런 행동이 그들에게도 스트레스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이교수는 충고했다.
처음부터 상대방을 인정·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초기에 잘못된 인간관계를 오랫동안 끌고 갈 경우 심신에 미치는 고통은 엄청난 것이며 심하면 정신병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이교수는 충고했다. 김광일교수는 『입사·인사·입학시즌에 두통·소화불량·불면증 등이 지속될 경우 자신이 우울증이 아닌지를 의심하고 우울증일 경우 원인을 찾아 적극적인 치료에 임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말했다. <김창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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