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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세종기지 「과학연구시험장」자리 잡는다|본지 신종오기자 킹조지섬 현지취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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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백색의 제7대륙 남극. 그 최북단 킹조지섬의 세종기지에 태극기가 게양된지도 17일로 3년을 맞는다.
세종과학기지는 남극의 꼬리부분에 해당하는 남셰틀랜드 군도의 킹조지섬 바튼반도 북안에 자리잡고 있다. 남미대륙과는 가장 가까운 남극대륙의 관문으로 칠레의 끝쪽과는 직선거리로 1천2백40㎞. 기지의 위치는 남위 62도13분, 서경 58도45분으로 한국과는 지구의 거의 반대편에 위치해 있다.
헬기에서 내려다 본 킹조지섬은 온통 눈으로 덮여있었으며 세종기지 주변의 해안과 주변언덕만 땅이 드러나 있었다. 기지 앞의 맥스웰만과 마리안소만에는 빙벽에서 떨어져 나온 유빙이 옥색빛을 발하면서 떠 있었다.

<체감추위 훨씬 심해>
세종기지는 주황색 컨테이너 건물로 태극기와 한국해양연구소 깃발이 펄럭였다. 기지건물 사이의 세종로에 세워진 이정표에는 서울까지 1만7천2백40㎞, 뉴욕까지 1만1천5백20㎞라고 적혀 있었다. 남극은 지금이 한여름이다. 1월 평균기온은 영상 1.6도, 2월은 2.4도 정도다. 3월 중순부터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기지 뒤편의 세종호와 현대소가 얼어붙기 시작한다. 6월부터는 바다가 50∼70㎝두께로 얼기 시작하며 눈은 세종로에만도 3∼4m높이로 쌓이고 8월이 되면 평균기온은 섭씨 영하 7∼8도로 가장 낮아진다.
연평균기온은 영하 2.6도에 지나지 않지만 연2백일 정도 초속10m이상의 강한 바람이 불기 때문에 체감추위는 실제기온보다 10∼20도정도 더 낮아지게 된다.
여름기온 섭씨 영하16∼30도, 겨울기온 영하 32∼70도를 보이는 남극의 본대륙에 비하면 킹조지섬은 훨씬 따뜻한 곳이지만 한국인들에게는 가혹한 환경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의 세종기지는 오전4시쯤 해가 떠 오후10시쯤 진다. 낮이 18시간이나 되는 셈이다. 우리의 동지 때 낮이 가장 길어 20시간쯤 되고 하지 때엔 밤이 가장 길어 19시간쯤 된다.
기지근처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남극동물로는 펭귄과 코끼리해표.
기지에서 남쪽해안을 따라 3㎞쯤 떨어진 곳에 펭귄마을이 있다.

<3㎞ 이웃 펭귄마을>
지금이 한창 부화기로 바다 위 30여m높이의 언소빼기는 온통 털이 보송보송한 새끼펭귄과 알을 품고있는 펭귄들로 뒤덮여 있었다.
바다에서 먹이를 물고 비탈길을 오르는 펭귄행렬은 매우 장관이었다. 도적갈매기의 습격을 받은 듯 썩어 가는 펭귄시체도 여기저기에서 보였다. 이곳을 찾는 기지손님이나 관광객들 때문에 요즘이 펭귄에게는 가장 괴로운 때인 것 같다. 펭귄이 마을을 떠나기 전에 한국기지가 보호울타리를 설치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주변 바다의 해빙 위에서 낮잠을 즐기는 해표는 지금은 그 수가 그리 많지 않으나 겨울에는 1백여 마리씩 한꺼번에 볼 수 있다고 한다
남극에는 현재 20여개국 80여개 기지가 운영 중에 있으며 신·증설 국가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북한도 지난해 초와 12월에 조사단 4명씩이 파견돼 후보지를 답사하고 갔다는 것. 북한은 동남극의 중국과 소련·호주기지 중간 지점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러졌다.
한국기지가 있는 킹조지섬에는 칠레·소련·중국·우루과이·아르헨티나·폴란드·브라질·페루 등 모두 9개국이 진출해 있다.
우리기지는 본관동·연구동·거주동·장비동·비상숙소(신라호텔·세종호텔)등 9개동 5백10평 규모. 지난해 12월부터 짓기 시작한 장비보관동과 창고·발전동 마무리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세종기지는 킹조지섬의 여러 기지 가운데서도 비교적 시설이 잘 돼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하수처리시설과 쓰레기 분리수거 및 소각시설·방화시설은 다른 기지가 부러워하는 시설로 민간환경보호단체로 88년부터 남극대륙에 상주하고 있는 그린피스의 두차례 검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장순근 기지대장(46·지질학)의 설명이다.
금년 말까지 1년간 기지에 머무를 제4차 동계연구단은 장박사를 비롯한 15명. 지질·생물·해양·기상분야 연구요원 5명과 통신·조리·전기·중장비·시설·의료 등 기지유지요원 10명으로 구성됐다.
이와 별도로 12∼1월에는 김동엽박사 등 해양연구소팀과 박룡안·권병두·조수헌교수 등 서울대팀으로 구성된 제4차 하계연구팀이 기지를 다녀갔다.
장대장은 남극의 자연환경은 문명세계의 발전과 함께 변하고 있다면서 남극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남극은 우리에게 없는 천혜의 연구시험 장이란 점에서 기초과학은 물론 독특한 환경을 이용한 응용기술과학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국소식 유일한 낙>
기지에서의 연구는 주로 기지주변 자연환경과 기상·대기물리현상의 관찰, 기지주변의 해양생태계, 지질현상규명 등 초보적인 연구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연구분야의 다양화와 심도 있는 연구를 위해서는 전문가의 노력과 당국의 지원이 따라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말하자면 세종기지는 아직은 연구시설이라기보다 남극대륙 진출을 겨냥한 기지유지라는 개념이 더 강한 것 같다.
세종기지에도 어려움은 많았다. 우선 남극연구와 물자보급을 위한 쇄빙선과 소형선박은 그만두고라도 중장비조차 크게 부족하다.
현재 설상차·다목적차량·수륙양용차·지게차가 각 1대씩 있으나 하역능력이 제한돼 있고 기상악조건에 의한 자연마모나 고장률이 높아 고장시에는 큰 애로를 겪게 된다는 점이다.
기지를 방문한 오정환 해양연구소극지 지원실장(40)은 기지시설운영요원(외부고용)들간의 업무 인수인계가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도 큰 문제라며 기지운영 점검반 구성과 월동근무요원 증원, 극지 근무수당 인상(현재 기본급의 2백%)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애로사항은 대원들간의 인화. 싱싱한 야채나 과일을 2개월 정도밖에 구경할 수 없는것은 콩나물이나 두부로 그런 대로 1년을 견딜 수 있으나 제한된 생활공간, 고립된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해소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들의 유일한 낙은 고국의 소식을 듣는 일.
그들은 오늘도 까치가 울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이곳 대원들은 한국의 신문·잡지·편지를 싣고 오는 칠레의 헬기를 까치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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