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걸프전 사진 속에서 「비극의 실상」 읽도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걸프전쟁을 보도하는 사진들이 각종 지면을 뒤덮고 있다. 걸프전쟁 스케치라는 어느 일간지의 글줄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대부분의 사진들은 전장의 겉을 핥고 있는 것 같다. 이 사진들은 전쟁을 지나치게 극적인 구경거리로 다루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전쟁의 참화와 고통, 그리고 공포와 피비린내보다는 군대나 현대적 화력의 위용이나 전투의 주인공들에 대한 신화적 조명에 더 관심을 쏟는다.
우리는 어느덧 수많은 단편적 현실을 실감있게 전해준다는 사진의 힘으로 그 현실자체를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는 계기를 맞기보다는, 현실을 오해하거나 단지 구경거리로 소비해 버리는 고약한 습관에 젖어 있는지도 모른다.
사진은 우리가 흔히 그렇게 믿고싶어 하듯이 객관적 사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사진은 우리 눈에 드는 것을 비추어내는 허상이며 환영이다.
이 점은 요즘의 신문에서도 잘 드러난다. 각종 신무기나 작전개념도와 같이 그림으로 그려진 도상들이 번번이 동원되는 것은 사진이 정보전달의 객관성에 있어서 대단히 미흡하다는 점 때문이다. 사진은 그 자체로서는 크기나 위치·규모·방향 등에 대해서 아무런 객관적 사실도 전달하지 못한다. 사진은 겉모습을 빼어닮기는 하지만, 언어의 도움 없이는 어떤 이야기도 조리있게 전할 수가 없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사진을 「말더듬이」에 비유하기도 한다.
우리가 기왕에 그 내용이나 형태에 관해 얼마간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라면 사진은 그토록 설득력 있어 보이는 것이지만, 우리가 사전에 그것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것에 대해서라면 사진은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는 이제 전화속에서 죽어가는 사람의 고통 때문에 전율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장을 사진적 메시지의 효과에 어울리게 잡아낸 한 장 사진의 저 터무니없는 아름다움에 취하는 것은 아닐까.
같은 지면 위에서, 죽어가는 병사의 절규와 반라의 화장품 모델의 관능이 엇비슷한 긴장을 뿜어대면서 우리의 시야를 끌다가 사라지고는 한다. 이런 괴기스런 공존에 익숙해져 버린 우리의 눈이야말로 이만저만 냉담해져 버린 것이 아니다.
이렇게 보면 군수업체 주가 동향의 그라프를 더 세련된 「디자인」으로 꾸며주고자 날아다니고 있는 최신 폭격기 그림들은 차라리 우리 시대의 빼어난 우의적 그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