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의 「글방」(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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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울 영등포교도소(소장 오희창·55)는 5일 1백72명에 달하는 소년무결수들이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공부할 수 있도록 서당 20곳을 열었다.
서당이래야 교도소내 강당,소년수 7∼9명과 이들을 가르치는 「훈장」인 어른 미결수 1명이 수용된 서너평 남짓한 감방에 지나지 않지만 훈장을 따라 글을 읽는 제자들의 목소리는 글방이 떠나갈 듯 힘찼다.<사진>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르 황….』『태공이 말하기를 착한 일은 반드시 탐내고 악한 일은 즐기지 말라고 했느니라(태공왈 선사수식 악사모락).』
미결수가 수용된 2,3사 4개동에서 울려퍼지는 낭송소리는 언뜻 이곳이 교도소 아닌 시골마을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미결수는 형이 확정되지 않아 무죄추정을 받는 만큼 교정·교화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은 확정판결이 나기까지 5∼6개월을 무의미하게 허송하는 경우가 많고 소년수들은 새로운 범죄수법을 익혀나가기도 합니다.』
2년전 경기도 의정부교도소장재직때 미결수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글방을 차렸던 오소장은 「서당개설후 감방내에서의 사소한 시비마저 사라져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얻고 지난해 12월 이곳에 부임해오자마자 글방을 열기위해 훈장선정작업에 착수했다.
훈장은 성년미결수 7백여명가운데 40세가 넘고 고졸이상의 학력에다 비교적 가벼운 범죄를 저지르고 수형생활이 모범적인 사람들로 20명을 선발했다.
또 글방개설의 뜻을 전해들은 답게출판사 대표 장소님씨(40·여)가 교재 2백권을 흔쾌히 기증하는 등 외부의 지원도 적지않았다.
사업을 하다 지난해 8월 부도를 내고 1심에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아 항소중인 「훈장」 홍모씨(51)는 『권선을 가르치게 되니 내자신의 죄스러움이 더욱 부끄럽게 느껴져 오히려 내자신을 교정하는 기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해 9월 절도혐의로 구속수감된 「제자」 이모군(19)은 『글을 배우다보니 지겨웠던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며 『이곳에 있는동안 천자문은 반드시 떼고 말겠다』고 의욕을 보였다.<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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