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의혹 수사 지시하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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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뒤얽힌 수서시비,달리 풀길 없다
서울 수서지구 택지 특혜분양 의혹은 4일 열린 국회행정위에서의 집중적인 추궁에도 불구하고 풀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날의 박세직 서울시장의 답변이나 민자당·평민당·청와대·건설부등 관련 정당과 정부기관의 해명은 정부와 정치권이 다함께 이 사건을 하루라도 빨리 마무리하려는 듯한 기색이 농후하다.
그것은 관련 정부기관과 여야가 하나같이 다투어 책임을 다른 기관에 미루며 발빼기에 급급하고 있는데서도 잘드러난다. 서울시장은 책임을 국회건설위의 청원에 돌렸고 국회건설위는 물론 민자당과 평민당은 건설부나 서울시에 책임을 미뤘으며 청와대역시 의례적인 민원처리과정이라고 했다가 비서관이 직접 대책회의에까지 참석한 사실이 밝혀지자 비상식적인 해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여론의 압력에 못이겨 경위조사에 나선 국회행정위마저 겉으로는 서슬이 퍼랬으나 말뿐이지 불충분한 해명을 듣고도 서둘러 회의를 종결해 버렸다.
자,이제 이렇게 되면 어떻게 국민의 의혹을 풀어야할 것인가. 의혹을 풀어주어야할 기관들이 바로 그 의혹의 당사자이니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논리적으로는 완전히 이 문제에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기관이나 기구가 나서야할 계제이나 현실적으로는 그런 기관이나 기구가 없고 새로이 그것을 만드는 것도 법률적인 난점이 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차선책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이 청와대의 의지에 달린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번 문제에 대한 수사에 나설 기관은 당연히 검찰이 되겠으나 이제까지의 반응을 보면 검찰은 눈치를 보고 있는듯한 인상이 역력하다. 검찰고위관계자는 『한보가 로비를 했다는 증거가 없다』『뇌물수수등에 증거가 없다』는 등의 발언을 하고 있으나 형사소송법상 검찰은 구체적인 혐의만 있으면 수사에 착수할 수 있으며 또 이제까지 그래왔다.
그런데 유독 이 사건에 대해서만은 눈치를 본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우리는 청와대가 스스로에 대한 불필요한 의혹을 씻어버리기 위해서도 검찰에 대해 여야나 정부의 입장을 고려할 것이 없는 엄정하고 철저한 수사를 지시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도대체 어떻게 한보가 집을 지을 수 없는 자연녹지를 사들여 주택조합에 전매할 수 있었을까. 이는 정부기관의 정보유출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누구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이 과정에서 한보 임직원명의의 매입이 「조세를 회피하기 위한 행위」로 뒤늦게 규정돼 이미 증여세를 물린바도 있다.
특별분양이 안되면 자금을 돌려주어야 하는데도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지정한 이후에도 조합원을 모집한 것은 어떤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 자신감은 어떻게 나왔을까. 또 서울시의 갑작스런 정책변경의 배경은 무엇인가.
이밖에도 의혹과 혐의는 이미 언론을 통해 무수히 적시되고 있다. 그런데도 어떻게 검찰이 팔짱을 끼고 바라다만 볼 수 있는 일인가.
정부·여당은 수서의혹을 수사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들린다. 「법적 잘못이 없다」고 뻗댈 모양이나 그 법적해석에 관한 반박은 정부내부에서조차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소관도 아닌 청와대비서관이 공문을 서울시에 발송하고 최종대책회의에 참석까지 했으면서도 청와대가 가만 있다면 의혹을 스스로 사는 일이다.
거듭 말하지만 청와대가 의지를 보이는 것이 책무요,유일한 현실적인 해결책이다.
아울러 국회도 한보그룹 책임자를 국회에 불러야 하고 정부가 끝내 움직이지 않을 때는 국정조사권을 발동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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