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후정초교 황무지를 꽃동산으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2006 아름다운 학교 시상식에서 영예의 대상을 차지한 인천 후정초등학교 학부형과 학생들이 텃밭에서 배추를 수확하고 있다.인천=안성식 기자

"이 넝쿨콩이 너희처럼 무럭무럭 자라 옥상에 올라가면 그땐 학교 축제를 열자구나."

2004년 인천 후정초등학교에 부임한 최영화(58) 교장은 아이들과 넝쿨콩을 심었다. 교사들은 교과 과정에 나오는 식물과 꽃 50종을 분석해 아이들에게 씨를 나눠줬다. 축제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정성에 버려졌던 애물단지 '공터' 550평은 어느새 꽃밭으로 변했다. 도연(10)이는 "머리만 한 수박.참외를 키워 복지관 할머니께 갖다드리면서 '흙에서 이로움을 배우라'던 선생님의 말이 실감났다"고 신나 했다.

올 가을 최 교장과 아이들의 약속은 2년 만에 실현됐다. 기대보다 빨리 자란 넝쿨과 얽혀 학생과 학부모 등 300가족은 '후정 꽃축제'를 열었다. 축제가 끝나고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혔다. 아름다운학교 운동본부와 중앙일보가 주최한 '2006 아름다운 학교' 대상으로 당당히 꼽힌 것이다.

최 교장은 "개교한 지 1년 되는 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을 때 모두 위로하더라"고 했다. 부임한 학교에선 꽃 한 송이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저기 널려 있는 공터는 산교육의 현장이었다. 최 교장은 아이들과 공터를 개간하는 것에서부터 교육을 시작했다.

최 교장 혼자 일한 건 아니었다. 그는 학부모 500명으로 '인력 풀'을 만들었다. 학부모들이 각자 도울 수 있는 봉사활동 영역을 정해 학교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어머니들은 어느새 컴퓨터.독서.요가 동아리를 만들어 친하게 어울렸다. 2년 전 전국 평균 1인 장서 수 5.5권에 훨씬 못 미치던 도서관은 날로 번창했다. 위선환(53) 교감은 "학부모 사서 도우미 70명과 학생들이 하루에 책 300여 권을 빌려가는 아늑한 카페로 만들어갔다"고 귀띔했다. 학부모 이주남씨는 지혜놀이방에 쓸 완구 1000점을 기증했다. 놀이방에서 친구들과 노는 데 재미를 붙인 아이들은 학원도 끊고 학교에 남아 있곤 한다. 개교 초기엔 기피 학교로 불렸지만 후정초등학교가 이젠 아이들이 떠나기 싫어하는 학교가 된 것이다. 책을 제일 많이 읽는다는 지환(10)이는 틈날 때마다 '지혜의 샘터' 도서관을 찾아간다. 라벤더를 키우는 희주(10)는 3층 복도의 '허브동산'의 단골 손님이다.

아름다운학교 운동본부 이수환 교육지원위원장은 "후정초등학교는 한 조각의 땅도 소홀히 하지 않더라"며 "학부모의 창의적 봉사활동 등은 공교육 혁신의 모델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이원진 기자 <jealivre@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