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 국장, 4000만원에 외환은행 넘겼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재정경제부의 일개 국장이 외환은행 헐값매각을 주도했다는게 말이 됩니까? 재경부 국장이 불법인지 알면서 불법을 저지른 의도가 뭡니까?"

지난 6월19일 감사원 브리핑룸. 하복동 감사원 제1사무차장이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에 대한 감사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 결과 자료에 명시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외환은행은 헐값으로 불법 매각됐으며 변양호 당시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이 외환은행 헐값매각을 주도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결과에 브리핑룸은 웅성거렸다. 기자들의 질문은 일개 재경부 국장이 2003년 당시 외환은행이라는 큰 은행을 불법적으로 매각할 수 있었느냐는 점과 재경부의 엘리트 국장이 뭣 때문에 불법을 저질렀는가란 동기에 집중됐다.

당시 감사원 하 국장은 "감사원 차원에서는 (윗선이 개입했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고 변 전 국장이 외환은행 헐값매각을 주도한 동기에 대해서는 "검찰에서 밝힑 것"이라고 답했다.

7일 발표된 검찰 수사 결과도 '윗선 개입' 의혹에 대해서는 감사원과 마찬가지로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으로 같다.

◆검찰이 밝힌 변 전 국장의 동기 3가지

다만 변 전 국장의 동기와 관련, 검찰은 3가지 답을 내놓았다. ▲절친한 고교 동기인 하종선 변호사의 청탁을 받았다 ▲하 변호사로부터 4174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았다 ▲2005년에 보고펀드를 만들면서 외환은행으로부터 400억원의 출자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검찰이 밝혀낸 이런 동기에 대해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우선 아무리 친한 고등학교 친구의 청탁이라고 해도 법을 위반해서까지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할 만큼 변 전 국장이 지각없는 사람인가 하는 점이다.

또 우리나라 재경부 국장이 뇌물 4174만원에 비리를 저지를 정도로 부패했느냐는 점도 의문이다.

게다가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매각하는 대가로 변 전 국장이 받았다고 검찰이 지적한 4174만원이 뇌물인지도 밝혀져야 하는 부분이다.

우선 검찰은 4174만원 가운데 3000여만원이 외환은행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인 2003년 5월에서 7월 사이에 변 전 국장의 동생 회사에 투자금 명목으로 전달됐다고 밝혔다.

외환은행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3000만원이란 돈이 건네졌다는 것은 의심스럽지만 변 전 국장의 동생 회사에 투자된 것이라면 뇌물인지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보고펀드에 출자한 나머지 은행들은 뭔가?

또 나머지 774만원도 외환은행 헐값매각의 대가성 뇌물인지 논란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이 774만원은 외환은행 매각이 끝나고도 몇 개월이나 지난 2004년 7월에 변 전 국장이 자동차 할인대금으로 돌려받은 돈이기 때문이다.

검찰에 따르면 변 전 국장은 당시 현대해상화재보험 사외이사였던 하 변호사에게 그랜저 승용차를 구입하는데 30% 할인을 받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10%만 할인받는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 승용차 대금의 90%를 입금했다가 20%에 해당하는 금액 774백만원을 현금으로 돌려받았다.

검찰은 아울러 변 전 국장이 2005년 8월말 보고펀드를 설립한 뒤 외환은행으로부터 400억원의 출자를 받았다는 점을 들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부정하게 도와준 대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2005년 8월 보고펀드가 설립된 이후 국내 대부분의 은행이 보고펀드에 출자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가성'이라고 확신하기에 부족한 감이 있다. 변 전 국장이 받았다는 수수료도 사모펀드 운용의 대가로 모든 사모펀드들이 받고 있는 것이므로 뇌물이라고 증명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왜?'가 부족하다

이에 대해 감사원 관계자조차 "외환은행 헐값매각에 대한 감사원 감사 중간 결과를 발표할 때 재경부의 엘리트 국장인 변 국장이 도대체 왜 불법 매각을 주도했느냐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며 "이번에도 그 '왜'에 대한 대답은…"이라며 여운을 뒀다.

결국 검찰은 지난 3월부터 수개월간 총 10여명의 특별수사팀을 꾸려 연인원 630명을 소환조사하고 총 920박스 분량의 서류철과 1만800기가 바이트 상당의 전산자료를 조사했으나 외환은행 헐값매각의 '실체'를 특별하게 밝혀낸 것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윗선 개입을 확인하지 못해 '몸통'은 없고 변 전 국장이라는 '깃털'만 남았다는 점에서는 감사원 감사 결과와 대동소이하고 변 전 국장이 불법 매각을 주도한 동기에 대해서는 '과연?'이라는 의문만 남겼기 때문이다.

다만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과 관계는 없지만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 외환카드을 흡수 합병하는 과정에서 주가 조작이 이뤄졌다는 점을 밝힌 것이 최대 성과라면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머니투데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