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덤볐다간 …" 손 놓은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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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1개월 만에 미 달러당 원화 환율이 910원대로 떨어졌다. 외환은행 딜러들이 6일 서울 을지로 본점 딜링룸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거래를 하고 있다.강정현 기자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7.9원 급락한 달러당 916.4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로써 원-달러 환율은 6일 연속 하락했고, 외환위기 이후 9년 만에 달러당 910원대로 진입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1달러를 900원 밑으로 주고도 살 수 있는 시기가 눈앞에 다가왔다고 분석했다. 수출의 가격경쟁력과 직결된 원-달러 환율이 추락함에 따라 수출업체들의 비명이 커지고 있다.

◆ 쏠리는 심리가 문제=이날 시장은 '투매'에 가까웠다. 산업은행 외환거래팀 이정하 차장은 "달러당 920원 선이 무너지면서 수출업체들이 보유 달러를 마구 쏟아냈다"고 전했다. 최근 수출 호조로 달러를 많이 번 수출업체들이 앞다퉈 달러를 파는 것은 환율이 더 떨어지기 전에 달러를 원화로 바꿔야 이익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6일 전만 해도 수출업체들은 1달러를 주면 930.8원을 손에 쥘 수 있었으나, 이날은 916.4원밖에 건지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더구나 앞으로 원-달러 환율이 900원 밑으로도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가 수출업체들을 더 초조하게 하고 있다. 씨티그룹 오석태 부장은 "상당수 전문가가 내년 원-달러 환율을 900원 선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이런 환율 하락 추세라면 900원대 아래로 추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연내 900원 선 밑으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환율 하락의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 경기 부진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달러화 약세'다. 하지만 요즘 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더 내릴 것이란 심리가 퍼진 게 환율 하락 폭을 더 키우고 있다. 산업은행 이 차장은 "환율 하락 추세를 돌릴 만한 요인이 없다"고 말했다.

◆ 막막한 정부=시장은 외환 당국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당국은 이날 개입하지 않았다. 달러를 팔자는 사람이 워낙 많은 시점에 개입했다가 실탄만 날릴 뿐이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대신 말로는 강력하게 경고했다. 외환당국 고위관계자는 이날 "실탄은 얼마든지 있고, 적절한 시기에 실탄을 쓰겠다"고 했다. 그는 또 "수출업체들은 원화가 계속 절상될 것이란 일방적인 기대만으로 달러화를 팔고 있으나, 내년엔 원화 약세로 상황이 바뀔 수도 있으며 그럴 경우 지금 달러화를 매도하고 있는 수출업체들이 낭패를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시장이 당국의 이런 구두 경고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환 당국이 2003~2004년 환율 하락을 막으려다 엄청난 손실을 보고 국회와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은 뒤론 시장 개입을 꺼린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환율 추락이 저지될지는 외환당국이 얼마나 적절한 수준에서 시장에 개입해 신뢰를 회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 환율 덕에 빨라질 2만 달러 시대=내년엔 '1인당 국민소득(GDP) 2만 달러'시대를 맞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1995년 1만 달러를 돌파한 지 12년 만이다. LG경제연구원은 내년 성장률을 4%로, 연평균 환율을 달러당 925원으로 잡는 등 보수적으로 전망해도 내년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200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환율 상승이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의 일등공신인 셈이다.

이상렬.최익재 기자<isang@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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