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불법체류 더 이상 관용은 곤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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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1만명이 넘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의 단속이 시작되자 강제 출국조치를 피하기 위한 잠적사태가 빚어지면서 노동시장이 교란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장기체류자여서 정부가 4년 미만 체류자를 대상으로 10월 말까지 실시한 체류 확인 신청에 응하지 않아 합법적 관리시스템인 고용허가제의 대상에서 빠진 상태다. 이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일부 제조업체는 벌금을 각오하면서까지 계속 고용할 태세다.

3D업종 기피현상으로 극심한 인력난에 시달리는 국내 제조업체들로서는 힘겨운 시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정부의 법 집행에는 추호의 흔들림도 있어서는 안 된다. 단속을 느슨하게 하거나 일부의 요구대로 전면적인 사면을 한다면 한국은 불법체류자의 천국이 될 것이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외국인 노동력을 산업수요에 맞춰 안정적으로 공급하겠다는 정부의 계획도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지금 제조업체의 인력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도처에서 나오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정부는 보다 넓게, 멀리 내다보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목전의 불을 끄기 위해 불법체류를 눈감아 준다면 산업구조 고도화 과정에서 막대한 국가적 비용이 지불될 것이다.

물론 정부는 제조업체에서 인력대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무엇보다 고용허가제가 시작돼 합법적으로 5년간 체류할 수 있는 노동자가 입국하는 내년 8월까지의 과도기를 잘 넘겨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합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가운데 일자리를 갖지 못한 2만여명이 인력난을 겪는 제조업체에 취업하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한다.

이번만큼은 효과적인 단속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려면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뿐만 아니라 노동부와 검찰.경찰의 협력체제가 긴요하다. 1천여명에 불과한 보호소의 수용능력도 대폭 늘려야 한다. 그래야 불법체류자를 출국시키기 전에 밀린 임금을 받아줄 시간을 확보할 수 있고, 인권침해 소지도 줄일 수 있다. 정상적인 외국인 고용을 위해 법을 만들었으면 법이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