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이는 방공호에 대피했는지…”/쿠웨이트 교민 신자철씨 가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15년 피땀흘린 터전 못버려 잔류/이라크군 점령뒤 생활비도 끊겨/국제전화 걸어도 「연락불가」 메아리만
고려대과학도서관 구내식당에서 식권판매를 맡고 있는 김이남씨(42·여·서울 불광2동)는 17일 오전 페만전쟁 발발소식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현기증이 일어 일을 포기하고 조퇴했다.
쿠웨이트 교민으로 귀국을 거부하고 남아 있는 9명 가운데 한사람인 남편 신자철씨(48)의 안전이 크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설마설마하던 전쟁이 터져 이라크군 주둔지는 불바다를 이루고 있다는데 그이는 방공호속에라도 대피해 있는지….』
김씨는 아들 동길(20·동국대1)·동민(17·선정고2) 형제와 함께 온종일 TV앞에 앉아 전쟁속보를 주시했으나 불안감과 답답증만 더해 계속 한숨만 내쉴 수 밖에 없었다.
김씨의 남편 신씨가 쿠웨이트로 간 것은 75년 6월.
갓 시작한 고무제조사업이 채 결실도 보기전에 유류파동으로 실패하자 한 건설회사의 쿠웨이트 파견 일용직 근로자를 자원했던 것.
신씨는 1년동안 현지의 건설현장을 떠돌다 한국인 근로자들이 김치를 매우 그리워하는 점에 착안,처음으로 사막을 개간해 10여년간 배추밭을 일구었다.
배추재배와 함께 교민 3명과 동업해 잡화점을 운영하던 신씨는 마침내 4년전 사파트시에 미니 백화점격인 30여평 규모의 「아세아상회」를 열어 남부럽지 않은 생활터전을 마련했다.
그동안 부인 김씨가 몇번 쿠웨이트를 다녀왔고 신씨가 가끔 귀국,10여차례 만나본 것이 전부일 정도로 재산모으기에 열심이었던 신씨가 『온가족이 함께 모일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던 것도 잠시였다.
지난해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점령해버렸던 것.
2백40여명의 교민 대부분이 쿠웨이트를 부랴부랴 「탈출」했으나 신씨는 15년동안 피땀흘려 마련한 삶의 터전을 두고는 도저히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12월24일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있었어요. 전화하기 위해 쿠웨이트에서 바그다드로 가느라 11시간이나 걸렸다더군요. 아버지는 버티는데까지 버티겠다고 하시며 서로 조금만 참자고 오히려 격려하셨어요.』
불과 1분 남짓한 짧은 통화가 큰 힘이 되긴 했지만 가족들의 경제적 어려움도 여간 고통이 아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직후부터 신씨가 매달 보내주던 1천달러의 생활비가 송금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부인 김씨는 지난해 9월부터 월35만원의 식당일을 얻었고 같은해 10월에는 서울 신사동의 방 세개짜리 집(42평)을 전세준 뒤 보증금 1천만원,월25만원의 월세방을 얻었다.
『애들 아빠를 못본지 5년이나 됐습니다. 살아 돌아오기만 한다면야 이까짓 고생 열번 백번이라도 하지요.』 김씨는 행여 연락이 닿을까 수화기를 들어 남편의 전화번호를 돌려보더니 「연락불가」라는 안내 목소리만 반복되자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이상일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