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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2개 '추억의간이역' 문화재 지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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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멈추는 곳,

간이역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중략)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 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곽재구의'사평역에서'>

전국 12개 '추억의 간이역' 문화재 지정
'속도'는'낭만'을 빼앗아갔다.
고속열차인 새마을호(1974년 8월)와 KTX(2004년 4월)가 등장하고 자가용승용차가 널리 보급되자 비둘기호(2000년 11월)와 통일호(2004년 3월) 운행이 중단됐다.
이에 따라 조그만 간이역들은 대부분 존재의 의미를 상실,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됐다.
문화재청은 전국 12개 간이역을 이달 중 문화재로 등록키로 했다. 현대 도시인들에게 낭만으로 남아있는 공간이 보존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된 것이다.
도시 생활이 답답할 때, 특히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에는 가족이나 연인, 친구끼리 간이역을 여행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역에 미리 전화로 문의한 뒤 무궁화호 열차나 자동차를 타고 가면 된다.

#근대사의 '쉼표'
간이역은 대부분 20세기 초 근대화의 물결에 따라 마차에서 기차로 교통수단이 바뀌면서 생겨났다.
교통통신이 발달되지 않았던 그 당시 간이역은 일본 등 외국에서 들어온 신문화를 받아들이고, 지역의 고유문화를 널리 퍼뜨리는 '출입구'역할을 했다.
일제 강점기·광복·한국전쟁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많았던 20세기에는 보따리를 지고 열차를 기다리던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잠시나마 숱한 사연과 애환을 풀어놓으며 숨을 돌렸던 근대사의 '쉼표'였다.
문화재청은 근대문화재과 김지성 사무관은 "근대사의 상징물인 간이역들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어, 보존 가치가 높고 관광자원화가 가능한 간이역들은 우선적으로 문화재로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내 간이역, 아파트숲 속 일산역
경춘선 화랑대역은 서울 노원구 공릉2동 육군사관학교 정문 앞에 있다. 당초 태릉역이었으나 1958년 이름이 바뀌었다.
1939년 근대 서양식으로 지어진 이 역은 넓이가 179㎡(54평)밖에 안 되는 아담한 목조건물이다.
자동차가 드물었던 1970~80년대에는 통기타를 매고 춘천·가평·청평·강촌·대성리 쪽으로 MT를 떠나는 대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던 역이다. 하지만 경춘선 복선 전철화 공사로 철도 노선이 바뀜에 따라 2009년이면 역이 폐쇄된다.
고양시 일산2동에 있는 일산역은 당초 백마역과 함께 서울 외곽에 자리잡은 한적한 시골역이었다. 그러나 1989년 인근에 일산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가운데 고립된 일제 시대 잔재가 됐다.
일산역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일제 말기였던 1940년대 초에는 일본군에 위안부로 끌려가던 젊은 여성과 강제 징용된 청년들이 열차를 타기 위해 모여들던 '아픔의 현장'이었고, 6.25 전쟁 당시에는 피난민을 빼곡히 실은 열차가 이곳을 지나갔다.
요즘에도 일산 5일장(끝자리 3,8일)이 서는 날이면 농산물 꾸러미를 든 농민들이 인근 지역에서 모여든다.
안광인(55) 역장은 "경의선 복선화 사업으로 역사가 자칫 사라질 위기를 맞아 안타까웠다"며"도시화의 상징인 신도시 안에 이런 공간이 남겨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리미엄 최준호·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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