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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 회복을 위한 캠페인/사람답게 사는 사회: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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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나만 편하면 그만/산업화·핵가족화속 이기주의 팽배/“남은 어찌됐건… 아무데나 침뱉고 꽁초 버려
「물질의 풍요,정신의 빈곤」.
황토길이 아스팔트로 포장되고 초가집터에 고층건물이 들어섰지만 우리의 생활습관과 의식은 물질의 성장에 비해 뒤처져 있다.
공공질서·공중도덕에서도 그 격차가 두드러져 우리 모두의 일상생활에 큰 불편과 불안을 낳는다.
7일 오후 9시30분쯤 서울지하철 1호선 신도림역 승강장.
담배꽁초·껌껍질·과자봉지·빈깡통·휴지조각 등이 어지럽게 널린 승강장엔 수원·인천행 전동차를 기다리는 시민 1천여명이 몰려있다.
날씨가 추운탓인지 남자들중 세명에 한명꼴로 담배를 빼들고 주위는 아랑곳 없이 연기를 뿜어댔고 일부 남자 승객들은 승강장에 놓인 30여개의 철제 휴지통 가운데 10여곳에 불을 지펴 놓고 쬐는 바람에 매캐한 연기가 온 승강장에 가득찼다. 여기저기서 재채기를 하는 여자 승객들이 눈에 띄었지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부분 20,30대 샐러리맨으로 보이는 승객들중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휴지통이 바로 곁에 있는데도 하나같이 바닥에 재를 털어댔다. 습관적으로 바닥에 침을 뱉는 사람도 서너명 눈에 띄었다.
인천행 전동차가 달려 들었다. 한 승강구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던 20여명중 단 한명만이 휴지통을 향해 꽁초를 버렸을뿐 나머지는 선로나 바닥에 퉁겨버리거나 떨어뜨리고는 승강장 앞으로 몰려갔다.
자동판매기에서 코피를 뽑아 마시던 20대 청년 두명은 남은 코피를 제자리에 쏟아부은 뒤 종이컵을 발로 꽉 밟고 뛰어갔다.
승객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바람에 그나마 어렴풋이 있었던 열은 흩어져 버렸다.
차안의 승객들이 채 내리기도 전에 안으로 밀치고 들어가느라 흐름이 뒤엉켜 한동안 혼란.
『질서요? 말도 마십시오. 오늘 이 정도는 양반입니다. 전동차가 조금만 연착해도 매표소에 몰려들어 유리창을 주먹으로 치는 바람에 한달에 한두번은 깨진 유리창을 갑니다.』 역무원 홍남순씨(35)는 시민들의 질서의식에 대해 묻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밤 10시가 넘으면 취객들이 전동차·대합실·승강장·선로 등을 가리지 않고 오물을 토하거나 용변을 보기 일쑤죠. 막차에 탄 취객들은 「집에 데려다 달라」며 생떼를 쓰다 주먹·발길질까지 해대 하루에 두세번은 112에 신고하는 불상사가 생깁니다』는 홍씨는 수요에 크게 못미치는 시설과 차량운행에도 문제가 있지만 그보다 우리 시민들의 「남이야 어찌됐든 자기 생각만 하는」 사고방식에 근본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역내 청소원 최화자씨(50)는 『청소원 11명이 교대해 계속 청소를 하지만 0시30분 막차가 떠난 뒤 전동차와 역내의 쓰레기를 수거하는 데만 두시간이 걸리며 나오는 쓰레기는 보통 너비 1m,길리 1m50㎝의 비닐봉지 10대분』이라고 했다.
전철승차 무질서는 시민들의 질서의식·공중도덕심 결여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매일같이 길에서 벌어지는 자동차 운전의 끼어들기·중앙선 침범·차선 및 신호위반·주정차 위반 등 교통질서,공중변소·공중전화 등 공공시설이용,공중이 모이는 장소에서의 기본예절에 이르기까지 옛 윤리는 설자리를 잃었고 새로운 규범은 아직도 정착을 못하고 있다.
손봉호교수(서울대 사회교육)는 『산업사회가 급격히 도래하면서 전통가치관이 무너지고 그 공백을 새로운 사회규범이 메우지 못한 틈새에서 자연 무질서가 고개를 든다』면서 『특히 핵가족화와 함께 극단의 이기주의가 번져 남을 인식치 않는 행동이 「무질서 도미노현상」을 초래하고 이는 결국 시민 모두에게 불편과 피해를 주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손교수는 『질서·도덕이란 교양에 따른 관습적 행위인 만큼 그동안 고도성장 과정에서 삭막해진 마음에 여유를 갖고 변화된 사회에 필요한 관습을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치안본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말 현재 전국의 차량교통법규위반중 ▲신호위반은 18만9천건 ▲차선위반 27만8천건 ▲중앙선침범 8만9천건 ▲불법주·정차 1백75만건으로 그 전해보다 10% 가량이 늘었다.
또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집계한 90년 9월말 현재 공중전화박스 유리창 파손은 19만5천건으로 89년에 비해 9% 증가했고 전화기 파손도 5만9천대에 이르러 피해액이 89년보다 1억3천만원이 는 11억6천만원. 이 돈은 결국 시민의 주머니에서 나갈 수 밖에 없다.
공사측은 『공중전화기 파손은 대부분 통화상태 불량을 참지못한 사용자의 조급성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자기 생각만하고 조급한 성정은 유감스럽게도 성별·나이·교육수준·사회적 지위와도 무관하다. 그런점에서 말하자면 「한국병」이다.
심지어 교통단속을 하는 경찰관을 차에 매달아 내달리고 주차단속 여성요원을 손찌검하는 난장판이 거리에서 일상처럼 벌어지는 상황은 이제 고쳐져야 한다.
손교수는 이와 관련,「참고 차례지키기」·「남도 생각하기」를 질서 재정립의 핵심으로 꼽았다.
남한테 양보하고 남을 위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남을 자기와 똑같은 권리를 가진 주체로 생각하는 것이 민주사회의 출발점이라는 지적이다. 그 실천이 이제부터 우리 모두의 과제다.<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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