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만해결 「최후의 담판」/세계의 관심속에 미·이라크 외무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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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마주 달리는 열차”… 충돌 위험/시한남아 「제2대좌」 가능성도
세계 이목이 9일 오전 10시30분(한국시간 오후 6시30분) 제네바에서 열리는 제임스 베이커 미국 국무장관과 타리크 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의 회담에 집중되고 있다.
유엔이 결의한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수시한을 불과 6일 앞두고 열리는 「마지막 담판」이라는 절박성과 회담성패에 페르시아만의 화·전이 좌우되는 중요성이 걸린 회담이기 때문이다. 미­이라크 양측의 「공식적」 입장이 너무나 팽팽하게 맞서 있는데다 양국 외무장관이 어떤 타협안을 도출해 낼만한 전권을 쥐고 있지도 못하기 때문에 이번 회담에서 극적인 타결책이 나오리라고 보는 낙관적 분석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은 이라크가 쿠웨이트에서 「무조건」 철수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강제로 철수될 것이라는 기본입장으로 회담에 임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은 구 쿠웨이트 정권의 복권을 관철시킨다는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 5일 라디오방송 연설을 통해 이라크에 대해 『쿠웨이트에서 철수하라. 그렇지 않으면 끔찍한 결과에 직면하게될 것』이라고 최후통첩을 하면서 이번 미­이라크 외무장관 회담이 『결코 비밀외교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타협의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나 전쟁을 피하기 위한 외교노력의 성패관건은 이라크의 철군을 아랍­이스라엘 분쟁해결에 연결시키려는 이라크의 입장이 어떻게 풀리느냐에 달려있다.
이라크가 일단 대외적으로 가장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부분은 쿠웨이트 철군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연계시켜야 한다는 것이며 이것이 보장되지 않으면 결코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이라크의 한 고위관리는 지난 4일 『베이커 장관이 미국의 낡은 입장을 되풀이한다면 이 회담은 단지 5분만에 끝날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도 6일 창군 2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철군요구를 단호히 거부하고 쿠웨이트는 이라크의 19번째주로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이처럼 외견상으로 보아 미­이라크는 마치 한 철로 위를 마주보고 달리는 충돌일보 직전의 열차로 비유될 수 있으며 이번 외무장관회담이 두 열차의 충돌을 방지할 수 있을지,아니면 오히려 가속도가 붙어 파국으로 이어지게 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번 미­이라크 외무장관회담이 아무런 가시적 성과없이 끝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전쟁돌입의 신호탄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견해가 유력하게 개진되고 있다.
이와 관련,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회담직전인 8일 이번 협상이 실패한다 해도 오는 15일의 시한까지 아직 외교적 해결 가능성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워싱턴 포스트지가 9일 보도하고 있다.
또한 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도 7일 『새로운 사태 해결방안과 제안을 갖고 제네바 회담에 임할 것』이라고 밝히고 『회담에 진전이 있으면 기꺼이 워싱턴을 방문하거나 베이커가 바그다드를 방문하도록 요청하겠다』고 말함으로써 양측의 첨예한 입장대립에도 불구하고 한가닥 협상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시사해주고 있다.
특히 부시 미 대통령이 비밀외교의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긴 하지만 협상에 있어 한쪽만의 완승은 있을 수 없다는 외교의 상식론을 고려할 때 이라크가 은밀히 흘리고 있는 부비얀도·와르바도의 조차 및 할양이나 철군 후 대 이라크 불침보장,후세인 정권에의 불간섭 등의 타협안에 대해 미국측이 어떤 실마리를 제공할 경우 이번 회담이 국면전환의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지기도 한다.
만일 이라크측이 15일의 철수시한이 임박해 일방적인 쿠웨이트 철수계획을 발표하거나 부분철군을 전격적으로 단행하게 된다면 미국으로서는 전면공격의 명분을 상당부분 상실하게될 뿐 아니라 대 이라크 서방·아랍 연합전선의 분열도 가져올 수 있다는 분석이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미­이라크 양국 외무장관은 이번 회담에서 자신의 「공식적」 입장을 재확인함으로써 각자 할만큼은 했다는 일종의 「모양내기」를 얻어냄과 아울러 사태해결의 단서를 찾아낼지도 모른다는 것이 대부분 외교소식통들의 분석이다.<박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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