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치처방」 지나친 낙관론/연두회견을 통해 본 91년 국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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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치·경제안정”진단… 실제완 감 달라
집권 4년째를 맞는 노태우 대통령은 올해엔 내치에 보다 비중을 둘 것임을 밝혔다. 노대통령은 연두회견에서 91년이 민주주의 정착과 경제정착의 고비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그러나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기보다 지금까지 공약한 사항들을 실천에 옮기는데 주력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그는 『외치에 강하고 내치에 약하다』는 지적에 대해 그의 외교가 국가의 좌표를 설정·제시한 것이라고 옹호했다.
노대통령은 3년전 집권하면서 민주화의 기치를 내걸고 권위주의 청산을 시대적 과제로 삼았었다. 그 결과 사회 각 분야에서 넘쳐흐르는 욕구분출을 효과적으로 교통정리하지 못해 정부는 신뢰성을 의심받고 길거리를 마음놓고 다닐 수 없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동안 국가발전의 기둥이 되었던 경제안정마저 흔들리는 총체적 난국을 맞게 됐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대한 노대통령의 시각은 지나치게 안이하다. 그는 「총체적 난국」이 마치 극복됐으며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안정이 큰 흐름을 이루고 있다는 듯한 낙관론을 제시했다.
이런 시각에서 노대통령이 새로운 사고와 분명한 소신을 갖고 정부가 할 일은 앞장서 할테니 물가·임금·노사문제 등 경제안정을 위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줄 것과 건강한 사회를 이룩하는데 국민의 동참을 호소한 것은 국내문제에 대한 정부의 모순된 자세를 노출한 것이다.
부동산투기가 잡히고 노사관계가 안정되었으며 물가가 한자리 숫자에 머물렀다는 말은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것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은 올해 다시 실시되는 지방의회선거를 공명하게 치르겠다는 정부의 단호한 의지와 범죄·폭력문제에 공권력을 계속 동원할 뜻을 밝혔다.
노대통령은 3월말쯤 실시될 지자제선거가 민주주의정착의 시금석이라는 정치적 의미와 함께 우리경제가 다시한번 도약하느냐,아니면 좌절의 구렁텅이로 빠지느냐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았다.
노대통령은 이같은 점을 의식,기자회견에서 타락·불법선거에 강력히 대처하겠다고 공언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국내정치문제에는 짤막하게 답변하고 통일문제·북방외교문제는 장황하리만큼 길게 설명해 「외치에 강하다」는 그의 면모를 과시했다.
노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에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올해가 남북 통일문제에 있어서 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노대통령은 남북관계에서 남북 민간접촉을 허용하는 개방자세를 보이면서도 학생들의 불법적인 북한 방문은 불허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노대통령은 정부·여권이 다시 추진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내각책임제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이 반대하면 개헌할 수 없다」는 단 한마디로 종래의 입장을 되풀이하고 더이상 언급하려하지 않았다.
그는 여야관계나 김대중 총재와의 회담에 대해서도 함께 일해가야 한다든가,문호개방의 자세만 밝히는 정도에 그쳤다.
대권후보에 대해 그는 그의 임기만료 1년전쯤,즉 92년 2월 전후해서 뽑는 게 바람직하다는 기존입장을 되풀이했으나 인물에 대해서는 민자당안에 그런 인물들이 있다고 경선가능성을 암시하는 듯한 함축적인 답변을 해 주목됐다.
경제문제는 올해 국민의 최대관심사가 될 것이다. 노대통령은 특별한 사태악화가 없는 한 물가상승이 한자리수를 넘지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연말연시를 기해 공공요금과 서비스요금의 대폭 인상으로 물가불안의 요인을 안고 출발한 상태여서 이것이 어느정도 신뢰성을 갖는 말로 비칠지는 의문이다.
노대통령은 집값,전·월세값을 최대한 억제해야겠다며 근로자임금도 물가상승범위내로 자제할 것을 요구하면서 이를 위해 근로자·기업 등의 「사회적 합의」를 이뤄주기를 촉구했으나 이에 대한 정부측의 책임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아마도 노대통령의 6공 정부가 갖는 가장 큰 문제는 신뢰성의 회복일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노대통령이 갖고 있는 안이한 낙관론과 그런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한 국정운영의 방향제시가 국민들의 기대와 신뢰에 얼마나 부응할지가 문제다.<이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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