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나선 “교통안전 선언”/치과의사가 스티커붙이기운동 4년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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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무질서 막는 파수꾼 이병태 원장/차량 2만여대에 무료배부/음주운전 절대금지·차선엄수 등/대부분 수칙 잘지켜 톡톡히 효과/자신이 윤화겪자 “혼자의 문제 아니다” 시작
「음주운전 절대금지 선언차」「차선엄수 선언차」「속도엄수 선언차」….
요즘 서울시내 도로에서는 「○○○○ 선언차」라는 스티커를 뒷유리창에 붙이고 다니는 승용차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스티커를 제작·배포하는 사람이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49세의 치과의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주인공은 서울 광화문에서 73년부터 치과의원을 개업하고 있는 이병태 원장.
이원장이 자신의 분야와는 별 관계가 없는 교통문제에 관심을 갖게된 것은 82년 4월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고나서 부터였다.
손수운전으로 고향인 김포를 향해 지방국도를 가던중 중앙선을 침범해 달려오는 트럭을 피하려다 논두렁에 처박혀 세아들등 가족과 함께 큰 부상을 입었던 것.
이원장은 이때부터 교통문제가 자신 혼자만의 주의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운전자들이 양보하고 법규를 엄수해야 해결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국내 교통사고 실태를 조사하고 외국의 현황도 둘러본 결과 우리나라의 교통문화는 크게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죠.』
이원장은 88년 1월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고 양보하면 나와 남의 생명·재산을 지킬 수 있다는 믿음아래 「교통선언」을 하고 나섰다.
「운전중 예의를 지킨다」「노인·여자·초보운전자의 주행을 방해하지 않는다」「운전중에 속도·신호·차선을 지킨다」 등이 선언의 내용.
이때부터 이원장은 친지들이나 병원을 찾는 환자들에게 교통선언의 취지를 설명하고 뜻을 같이 해줄 것을 호소했다.
이때 이원장이 착안한 것이 차량 뒷유리창에 붙이는 스티커. 「속도엄수 선언차」등 다섯종류의 내용으로 한장에 4백∼5백원을 들여 제작한 스티커를 무료로 배부하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비웃는 사람들도 많아 효과가 있을까 하는 의문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한달쯤 지나면서 이원장을 직접 찾아오거나 전화로 스티커를 요청하는 사람까지 나오는 등 예상외로 호응이 높아졌다.
지금까지 이원장으로부터 스티커를 받아 부착하고 다니는 차량은 2만여대로 그동안 든 경비는 1천여만원 정도다.
『스티커를 붙인 운전자들은 대부분 철저하게 운전수칙을 지키는 사람들이죠. 이런 사람들이 전체 운전자의 10%만 되어도 거리 분위기가 달라질 것으로 봅니다.』
이원장은 이 운동이 계속 확산된다면 자동차 1만대당 사망자수가 일본이나 미국의 30배가 넘는 「세계 1위」 기록이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이원장은 한때 라디오 교통프로그램 진행을 맡기도 했고,요즘도 가끔 출연해 자신의 교통선언 취지를 널리 전파하고 있다.
이원장은 교통사고를 가정파괴범의 차원으로 설명한다.
『이런 추세로 나가면 30년 후엔 우리나라 전체 가정의 절반이 교통사고로 죽거나 다친다는 얘기가 됩니다. 저의 조그만 스티커 한장이 가정의 행복을 지키는데 도움이 된다면 이 일을 계속해 나갈 생각입니다.』
이원장은 현재의 교통 무질서로부터의 시민 자구운동으로서 자신의 일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이훈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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