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안내스티커에서 학위 논문까지 잉크 찍는 게딱지 가게 6000여 곳|책 제외 국내인쇄물 70%소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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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종이 위에 잉크를 찍는 일이라면 아무거나 말씀만 허슈. 똑 소리나게 만들어 드릴께.』
명보극장에서 마른 내 길을 따라 중구청에 이르는 1.5km구간 인현동 일대는 어느 골목을 들어서도 풋풋한 종이 내음과 톡하고 후각을 자극하는 잉크냄새가 진동한다.
출판사·인쇄소·지업사 등-.
바닷 바위에 게딱지 붙듯 빼곡히 들어찬 국내 최대의 출판·인쇄거리다.
M인쇄 박종내 사장(50)은 책 종류를 제외한 국내 모든 인쇄물의 7O%정도가 이 거리를 거친다고 자신한다.
등록 출판사가 9백39개, 인쇄소가 2백47개소.
그러나 이 거리의 특성상 무 등록 영세업소가 대부분이어서 업체 수는 5천∼6천 개소를 오르내리고 종사자는 2만 여명을 헤아린다.
만들어내는 인쇄물은 안내스티커에서 명함·청첩장·카드·팸플릿·학위논문 등 각양각색.
이 거리의 원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정음사가 5O년대 초 이곳에 자리잡은 것을 기준 해 4O년 역사를 꼽는다.
『원래는 중구청 부근에만 밀집돼 있었는데 85년 이후 인현동일대로 확산됐어요.』태평로1가 도심재개발과 함께 중소기업은행·쁘렝땅백화점이 들어서면서 7백여 개의 인쇄소가 인현동으로 몰러 오늘에 이르렀다는 D복덕방 김환영씨(63)의 설명.
『업소수가 5천 개가 넘는 것은 인쇄소의 90%이상이 하청업체인데 다 영세하다보니 하나의 업소에 사장이 여럿인 때문이지요.』
K인쇄소의 경우만도 옵셋·금박·명함·접지를 취급하는 4명의 사장님이 주식회사(?)를 구성하고있다.『모양새는 이라도 지난해12월 한달 동안 크리스마스카드만 7O종에 2만장 쯤 찍었지요.』
9년 동안 종업원으로 일하다 작년5월 죽토 프라톤 기계를 8백 만원에 구입, 독립했다는 신경엽씨(27)의 성공사례.
월수입은 비록 7O만원정도로 종업원 때와 별 차이가 없지만 사장님 호칭과 경영의 재미를 견줄 수 없다는 것이다.
명함의 황보엽씨(30),옵셋의 전병옥씨(35),금박의 장웅성씨(35)도 기계 한대의 1인 회사 사장.
그러나 이들 모두 나름대로 1인자를 자부하는 전문가다.
명함의 황씨는 온갖 형태의 명함을 주문자의 기호에 꼭 맞게 만들어내고 금박의 장씨는 아무리 가는 금줄이라도 맵시 있게 찍어낸다.
S사 최승규씨(41)는 귀 돌림과 타 공의 1인자.
인쇄물의 모서리를 둥글게 깎고 구멍뚫는 일만 10년 넘게 해왔다.
『귀 돌림·타 공이 단순한 것 같지만 맵시 있게 해내려면 3년 이상 이력이 나야 제「손맛」을 익히게 되지요.』
이처럼 전문가들이 한 업소에 모여 일하다보니 간판은 상호가 작은 게 특색.
M인쇄의 경우 간판과 앞 유리창이 식자·복사·마스타·옵셋·인쇄·청타 등 글귀가 큼지막하게 도배하듯 나들어있고 정작 상호는 귀퉁이에 보일락 말락 씌어있다.
원청 업체와 인간관계로 맺어진 하청업체이기 때문에 상호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곳의 주고객 층은 출판기획 사와 대학생.
『어디 어디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운동권 유인물·플래카드도 이곳에서 제작되지요.』
80년대 중반 한창 시위가 많을 때는 형사들이 매일 들락거렸다는 D인쇄 김 모씨(32)의 귀띔.
이 때문에 관할 중부경찰서에서도 수시로 촉각을 곤두세운다.
이 출판·인쇄거리에서는 해가 바뀌면 주인들도 상당수 바뀐다.
『1년에 수백개 업소가 망하고, 또 수백 개 업소가 새로 들어서곤 합니다.』
워낙 영세한 업소들이 난립해있다 보니 주문이 달리면 자연히 망해 기계를 팔고 떠난다는 D복덕방 김씨의 설명이다.
『따라서 중고품 인쇄기계의 경우 주인이 대 여섯 번은 바뀌었을 겁니다.』
이 인쇄거리에도 지자제의 따뜻한 바람이 서서히 늘고 있다.
『연말연시가 대목이고 2월은 한가한 달이지만 지자제 선거를 앞두고 홍보물·카드 등 주문이 쏟아지지 않겠어요.』
M사 신씨는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지만 이 거리가 항상 기쁨에 넘치는 것은 아니다.
영세한 이들, 인쇄업소가 도심부적격시설로 낙인찍혀 언제 외곽지역으로 쫓겨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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