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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경제,다시 시작해야 한다/이젠 달라져야 한다:2(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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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올해 우리 경제가 어려움을 겪으리라는 것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민간경제연구소등은 물론,한국은행·한국개발연구원·산업경제연구원 등 관변 연구기관들이 이미 지난 연말부터 새해 경제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들을 내놓고 있다.
경제기획원도 올해 실질성장률이 지난해의 예측치 9% 내외보다 훨씬 낮은 7%선,경상수지 적자폭은 작년의 20억달러 수준에서 30억달러로 악화되고 물가도 지난해와 비슷한 8∼9%의 높은 상승률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치를 제시해 놓고 있다.
그러나 우리 생각으로는 이같은 지표들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물론 일제히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이같은 지표들이 우리 경제가 겪게 될 어려움의 크기와 파장을 가시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처럼 우리 경제를 어려움에 몰아넣을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에 적절히 대처하는 일이라 여겨진다.
사실 각종 지표만을 본다면 그 수치가 지난해에 비해 나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과연 위기의식까지 느낄 정도냐는데 대해 이론의 여지가 없지 않다.
7%라는 성장속도만 해도 선진국들에 비하면 월등 높은 수준이고 30억달러의 국제수지 적자나 8∼9%의 물가상승도 과거 적자시대,인플레시대의 우리 경제를 돌이켜보면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여겨질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올해 우리 경제가 겪게 될 난관과 시련을 가볍게 보려는 의견에 동조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 경제를 총체적 난국이라는 관점에서 보려 했던 89년의 상황보다 더 심각하고 어두운 국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볼 수 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처한 국내외 여건이 그때보다 훨씬 악화돼 있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는 89년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우리 경제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들,예컨대 고임금시대의 도래와 고임금 구조하에서 우리 경제가 살아 남기 위해 필수적인 생산성 향상과 산업구조 조정,기술개발 등 숱한 과제들을 어느 것 하나 해결하기는 고사하고 해결을 위한 기반조정 조차 실패하고 있다.
오히려 해이해진 작업현장의 분위기로 수출상품의 불량률은 더욱 높아지고 경쟁국과의 기술격차도 더 크게 벌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근로와 소득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없이 갑작스레 늘어난 소득수준은 과소비 풍조와 힘든 일을 기피하려는 안이한 생활자세를 국민들 사이에 확산시킴으로써 서비스산업의 이상비대와 제조업의 인력난이라는 새로운 사태를 초래하고 있다.
여기에 그동안 투자를 태만이 해온 사회간접시설의 부족은 우리 경제에 새로운 제약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고임금과 부동산정책의 실패,과소비풍조에서 비롯된 물가상승은 페르시아만 사태의 가세로 새해 들어 예측하기 어려운 불안요인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가중되는 물가불안은 서민가계에 대한 위협에 그치지 않고 전체 산업의 경쟁력 약화와 새로운 노사분규의 불씨가 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30여년만에 처음 실시되는 지방의회 의원선거도 민주화과정에서의 불가피성과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경제에는 적지 않은 교란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우려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국내 여건의 악화나 장애요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국제환경의 변화다.
이미 지난 연말부터 우리 경제의 목줄을 죄기 시작한 페르시아만 사태는 아직 그 향방을 가늠하기 어려우나 어떤 방향으로 결말이 나든 과거와 같은 값싼 기름값 시대의 재현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국제원유가의 상승이 우리 경제에 얼마나 큰 부담과 제약요인이 된다는 것은 1,2차 석유파동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지난해의 국제수지적자에 미친 영향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우루과이라운드의 협상의 교착에 따른 통상마찰의 격화,특히 미국의 우리나라에 대한 노골적인 통상압력의 가중은 허약한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감안할 때 페르시아만 사태에 버금가는 부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동서냉전구조의 해소로 안보문제보다 통상문제의 비중이 더 커지게 된 한미 관계의 변질은 우리에게 새로운 인식과 각오를 요구하고 있다.
페르시아만 사태의 장기화로 빚어진 선진국 경제의 침체도 대외의존형의 우리 경제에 폭넓은 제약을 가져올 것으로 봐야 한다.
이같은 중첩되는 국내외의 어려운 여건을 감안할 때 우리는 올해 우리 경제가 일찍이 겪지 못했던 시련의 한해를 맞을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이같은 시련과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해 우리는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처방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졸속한 「묘방」을 냈다가 시행착오를 겪는 것보다는 오히려 고통을 함께 나누면서 미래를 향한 도약의 기틀을 다지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당장 필요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당면한 위기상황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 선결과제다. 그리고 그같은 공감대를 바탕으로 고통을 함께 하자는 합의와 결의를 다지는 한편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권·정부·기업인 등 이 사회의 지도층이 솔선해서 수범을 보여야 한다. 정치인들이 국가의 어려움이나 국민생활의 불안을 외면하고 당리당략에 흐른다든가 정부가 정책지표 하나 제시하지 못한채 행정편의주의로 갈팡질팡하고 졸부들의 사치향락풍조가 사라지지 않는한 고통을 함께 나누자는 국민적 공감대는 이루어지기 어렵다.
동시에 기업인은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기술개발과 시장개척에,근로자는 욕구를 자제하고 생산성 향상에,가계는 쓰고 보자는 방만한 생활자세를 삼가고 근검절약의 기풍을 키워나가야 한다.
지금 우리는 우리 국민의 인내와 각오,미래에 대한 의지와 결의를 시험받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91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문제는 앞으로 우리나라의 진운에 직결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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