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금만 13.5조, 더 못 버틴다" 가스공사도 요금 인상 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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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혜 한국가스공사 사장이 22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가스요금 인상의 필요성을 설명 중이다. 가스공사

최연혜 한국가스공사 사장이 22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가스요금 인상의 필요성을 설명 중이다. 가스공사

에너지 공기업 수장들이 잇따라 공공요금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16일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에 이어 최연혜 한국가스공사 사장이 22일 요금 인상을 호소했다. 두 기업 모두 오랜 기간 ‘밑지는 장사’를 해왔는데, 재무 상태가 더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나빠져 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날 최 사장은 “가스공사의 미수금 규모는 전 직원(약 4000명)이 30년간 무보수로 일해도 회수가 불가능해 벼랑 끝에 선 심정”이라며 “조속히 가스요금을 인상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3월 말 현재 가스공사의 미수금은 13조5000억원에 달한다. 가스공사 회계에만 특수하게 적용되는 미수금은 자산으로 분류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영업 손실이다. 만일 미수금을 영업손실 처리했다면 가스공사는 자본잠식 상태일 것으로 분석된다.

이렇게 된 이유는 가스공사가 장기간 원가보다 싸게 가스를 판매해온 탓이다. 이날 현재 원가보상율은 80%가량에 그친다. 가스공사는 손해 보고 판 규모만큼 미수금으로 쌓고 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이 상태가 이어지다간 올 연말 미수금이 14조원을 돌파한다는 게 최 사장의 관측이다. 미수금 증가에 따라 이자 비용이 증가하면 그대로 가스 요금 인상 압력으로 더해진다. 지난해 기준으로 이자비용은 1조7000억원 수준이다. 하루당 47억원가량에 달한다. 만일 가스공사가 쓰러져 국유화라도 된다면 국민 세금으로 뒤처리를 해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국민 부담이 가중되는 구조다. 최 사장은 “국제 신인도가 추락해 자금 조달 금리가 오르고 천연가스 물량 조달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최대한 빨리 가스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초점은 얼마나 올리는지에 맞춰진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 이후 가스요금은 총 43%가량이 오르긴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만일 앞으로 1년 안에 미수금을 완전히 해소하기 위해서는 가스요금을 현재의 2배 넘게 올려야 한다. 그걸 한꺼번에 하면 민생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너무 크다. 이런 이유에서 최 사장은 “단계적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도 단계적인 가스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본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7일 “전기·가스 요금 정상화(인상)는 반드시 해야 하고 시급하다”고 말했다. 현재 기준으로 한국전력은 역마진 구조를 벗어났고 가스공사는 여전하다는 점에서 정부는 가스요금 인상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월 “올해 상반기 공공요금을 동결 기조로 가져가겠다”고 한 만큼 만약 올해 가스요금을 올린다면 7월 이후가 될 전망이다.

가스공사 안팎에선 이전 정부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크다. 원료비 급등에 따라 가스 요금 인상요인이 발생했는데도 무리하게 요금을 동결해온 탓에 현 정부 들어 요금 인상 압력이 크게 늘었다는 지적이다. 최 사장은 지난해 1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천연가스 국제 가격 급등에 따라) 가스공사는 2020년 8월부터 2022년 3월까지 8번 가스 요금 인상을 정부에 요구했지만, 번번이 묵살당했다”며 “정부에서는 아무런 이유도 설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같은 시기 해외 주요 국가들은 가스요금을 올렸다. 이 때문에 현재(지난 4월 기준) 한국의 가스요금(23.5원/MJ)은 EU(41.8원/MJ)이나 독일(42.5원/MJ), 영국(34.1원/MJ)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한전 쪽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제기된다.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정권 입장에선 가스·전기 요금을 인상하면 표에 도움이 되지 않아 꺼리는 경향이 있다”며 “필요한 요금 인상을 미루면 다음 정권에 부담이 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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