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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년 전 첫 등장 ‘전동킥보드’…몇년 못 가 사라진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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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강갑생 기자 중앙일보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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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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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처럼 시도 때도 없이 갑자기 튀어나온다고 해서 ‘킥라니’라는 오명까지 붙은 전동킥보드 사고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하순엔 광주광역시의 3차선 도로에서 전동킥보드를 타던 20대 초반의 남성이 넘어지면서 머리를 심하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틀 만에 숨졌다. 사고 당시 이 남성은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엔 전동킥보드로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하다 무단횡단 중이던 60대 여성을 치어 숨지게 한 30대 남성이 금고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기도 했다. 무면허로 타거나, 승차 인원을 초과해서 주행하다 넘어져 다치는 사고도 줄을 잇는다.

끊이지 않는 전동킥보드 논란
100여년 전 ‘오토페드’와 유사
초기에 관심 끌었지만 곧 퇴출
난폭 운전과 안전 문제에 발목

전동킥보드 사고 5년새 5.3배

1916년 영국 런던에서 여권 운동가로 알려진 한 여성이 오토페드를 타고 일하러 가는 모습. [사진 위키백과]

1916년 영국 런던에서 여권 운동가로 알려진 한 여성이 오토페드를 타고 일하러 가는 모습. [사진 위키백과]

도로교통공단의 개인형이동장치(PM, Personal Mobility) 교통사고 통계만 봐도 그 심각성은 확연히 드러난다. PM은 대부분이 전동킥보드이며, 관련 사고통계는 2017년부터 공식집계가 시작됐다. 최근 5년간(2019~2023년)을 따져보면 2019년 447건이던 PM 교통사고는 지난해에는 2389건으로 5.3배나 됐다. 사망자는 8명에서 3배인 24명으로 늘었고, 부상자도 473명에서 2622명(5.5배)으로 급증했다. 전동킥보드가 기본적으로 1인용 교통수단임에도 사고 건수보다 부상자 수가 더 많은 건 승차 인원을 초과해서 2~3명씩 타고 가다 사고가 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사고도 문제지만 전동킥보드의 인도 주행·난폭 운전으로 인한 시민 불편과 불만도 상당하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난 2021년 도로교통법을 개정해 만 16세 이상, 제2종 원동기장치 이상의 운전면허증 보유자만 전동킥보드를 탈 수 있게 했다. 또 인도 주행을 금지하고, 승차 인원을 초과해서 탑승하거나 안전모를 쓰지 않으면 범칙금을 부과토록 했다.

하지만 관련 연구를 보면 전동킥보드 이용행태는 별반 달라지지 않은 모양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지난해 7월 서울·부산·인천·대구·대전·광주·세종시와 경기·경남 등 9개 시도의 전동킥보드 3000여대를 대상으로 주행실태를 현장 조사했더니 인도로 다니거나 안전모를 쓰지 않는 사례가 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5년간 전동킥보드 사고 현황

최근 5년간 전동킥보드 사고 현황

안전모 착용률은 전년도의 19.2%에서 4.1%포인트 하락한 15.1%로 파악됐다. 주행도로 준수율 변화는 더 심각해서 전년도에 52.1%이던 것이 지난해에는 40.0%로 무려 12.1%포인트나 떨어졌다. 당시 공단 관계자는 “전동킥보드 10대 중 6대는 주행이 금지된 곳으로 다닌다는 얘기로 인도 침범이 더 심해졌다는 걸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음주 운전도 적지 않다고 한다.

사실 전동킥보드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심각한 건 아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공유 전동킥보드의 인도 주행과 무단 방치, 그리고 연이은 사고로 인해 시민 불만이 커지자 주민투표를 거쳐 지난해 10월부터 공유 전동킥보드를 완전히 퇴출했다.

최근엔 독일 중서부 도시인 겔젠키르헨이 독일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공유 전동킥보드 이용을 금지했다. 공유 전동킥보드로 인한 크고 작은 사고가 이어지는 데다 얼마 전엔 자전거 도로에 방치된 전동킥보드 탓에 자전거 전복 사고가 발생해 자전거 운전자가 숨지는 일까지 발생한 때문으로 전해졌다. 일본에서도 2022년 50대 남성이 야간에 전동킥보드를 타다가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쳐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20세기 초 우편물 배달에 사용되기도

전동킥보드를 둘러싼 국내외의 논란이 시작된 건 10년 이내로,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전동킥보드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은 의외로 100여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1915년 미국에서 첫선을 보인 ‘오토페드(Autoped)’가 바로 그것이다. 외양과 기능이 지금의 전동킥보드와 거의 흡사하다. 배터리로 전기모터를 돌려서 달리는 현재의 전동킥보드와 달리 앞바퀴 쪽에 155㏄ 용량의 휘발유 엔진을 부착한 점만 다르다.

관련 기록들에 따르면 최대 속도는 시속 30~50㎞가량이었고, 주행거리도 50~100㎞ 정도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판매가격은 100달러로 자전거보다 훨씬 비쌌지만 작고 날렵한 모양새와 성능 덕분에 제법 큰 관심을 모았다고 한다. 여성들이 단거리 이동을 위해 타는 경우도 많았고, 기업 차원에서 도입한 사례도 있었다. 미국의 뉴욕 우체국에서 우편물 배달을 위해 오토페드를 활용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오토페드는 미국에서 출시된 지 6년 만인 1921년에 생산이 중단됐다. 또 독일의 크루프사가 1919년부터 오토페드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역시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1922년에 단종됐다. 오토페드가 혁신적인 등장에도 불구하고 단명한 이유로는 ▶자전거보다 훨씬 높은 가격 ▶앉는 자리가 없는 불편함 등이 우선 거론된다.

여기에 시선을 끄는 또 한가지 이유가 있다. 올해 초 출간된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모빌리티 수업』(저자 한대희, 청어람미디어)에 따르면 오토페드가 출시된 1915년부터 일부 이용자의 난폭 운전과 교통 안전이 사회문제로 대두했다는 것이다. 또 비행 청소년들이 범죄를 저지른 뒤 오토페드를 도주 수단으로 사용해 경찰이 애를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난폭한 청소년 무리가 (오토페드로) 브루클린, 퀸즈, 맨해튼 자치구를 공포로 몰아넣었다”는 증언도 나온다.

종합해 보면 가뜩이나 가격 경쟁력과 편의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데다 난폭 운전 등으로 인한 사회적 논란까지 커지면서 결국 오토페드는 퇴출의 길로 접어든 셈이다. 지금의 전동킥보드 논란을 보면 100여년 전 상황이 재현되고 있는 느낌이다. 전동킥보드가 오토페드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이용자의 법규 준수, 그리고 안전하게 전동킥보드가 다닐 공간 마련 같은 노력과 대책이 이어져야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