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억짜리 해수담수화시설, 전기료 4억 쏟으며 놀리는 사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부산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에 조성된 해수 담수화 시설. 송봉근 기자

부산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에 조성된 해수 담수화 시설. 송봉근 기자

2000억원 가까이 들여 지은 부산 기장군 해수담수화 시설이 10년째 제대로 가동되지 못한 채 매년 억대 관리비만 축나고 있다. 원전과 가까운 이 시설에서 생산된 물을 공급받는 데 대한 주민 거부감은 여전하다. 최근 환경부 연구용역에서도 뾰족한 활용방안이 나오지 않아 부산시 등 관계 기관은 속을 태운다.

‘괴담’ 취급한 여론에 시설 가동 발목

21일 부산시에 따르면 부산 기장군에 있는 해수담수화 시설은 1954억원을 들여 기장읍 대변리 4만7000㎡ 부지에 조성됐다. 2009년부터 공사가 진행돼 2014년 8월 준공된 이 시설은 본래 바닷물을 하루 4만5000t 담수로 바꿔 기장군과 해운대구 송정동 주민 18만여명에게 식수(수돗물)로 공급할 예정이었다. 시설 조성엔 부산시와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이외에도 역삼투압 방식 해수담수화 기술과 시설 관리 노하우 등을 보유한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가 시행자로 참여했다.

낙동강 하류에 자리해 깨끗한 식수원 확보가 어렵던 부산에서 이 시설은 안정적인 먹는 물 공급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시설이 고리원전에서 11.3㎞ 떨어진 곳에 있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주민 사이에 삼중수소와 세슘 등 방사성 물질이 포함될 수 있다는 우려가 돌며 2014년 11월 예정됐던 담수화 수돗물 시범 공급은 유보됐다. 기장 바다에서 나는 미역·멸치 등이 거부감 없이 유통되는 만큼 부산시 등 시행 기관은 이런 우려를 ‘괴담’ 정도로 봤다.

부산 기장군 해수 담수화 시설에서 만들어진 수돗물 공급을 반대하는 1인 시위가 2015년 12월 7일 부산 상수도본부 앞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 기장군

부산 기장군 해수 담수화 시설에서 만들어진 수돗물 공급을 반대하는 1인 시위가 2015년 12월 7일 부산 상수도본부 앞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 기장군

부산시 상수도본부는 담수화 시설로 유입되는 바닷물과 생산한 담수의 수질을 수백 번 검사했다. 그런데 원전 가동으로 만들어지는 대표적 물질인 삼중수소(일반 수소보다 3배 무거움)는 주변 바닷물과 생산한 담수에서 한 번도 기준치(리터당 1~1.4베크렐) 이상으로 검출되지 않았다. 삼중수소는 우주에서 날아오는 방사선의 영향으로 자연 상태에서도 생성된다. 빗물에선 리터당 1베크렐 전후, 강물에선 1~2베크렐이 나온다고 한다. 정용훈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자연 상태 바닷물에서도 0.01~0.5베크렐 정도가 검출된다”며 “일반 강물로 만든 수돗물보다 담수화 시설에서 만든 물에 있는 삼중수소가 더 적다”라고 설명했다. 리터당 1베크렐 이하면 마시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런 여론에 발목이 잡혔다. 2016년 3월 치러진 민간 주도 주민투표에서 주민 5만9931명 중 1만6014명(26.7%)이 투표했고, 이 가운데 89.3%(1만4308명)가 담수화 수돗물 공급에 반대했다. 주민투표법상 유효 투표율 33.3%에 못 미쳤지만, 부산시가 공급을 강행하지 못할 정도의 반대 여론은 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후 시는 이 시설에서 만든 물을 희망하는 주택과 공장에만 공급하려고 했지만, 희망하는 곳이 없어 무산됐다. 한국원자력연구원 분석 결과 ‘안전하다’는 결과를 받고 ‘순수365’라는 병입수로 만들어 관공서에 공급하던 것도 공무원 사회 반발에 접어야 했다.

생산은 0인데, 전기료만 연간 4억원

필터 교체 등 해수담수화 시설을 돌보며 관리비용을 분담하던 두산도 적자가 쌓이자 2018년 손을 뗐다. 2019년부터 지난해(9월)까지 부산시는 시설 유지ㆍ관리비용으로 35억3100만원을 들였다. 연간 전기요금이 4억, 인건비는 2억원 수준이다. 시설 관리를 맡는 부산상수도사업본부 관계자는 “실제 담수화 수돗물을 생산하진 않지만, 전기 설비 등 유지를 위해 요금을 투입해야 한다. 현재는 직원 5명이 24시간 시설에서 교대 근무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산 기장군 기장읍에 들어선 해수담수화시설이 2014년 12월 완공 이후 방사성 오염 우려로 물을 공급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이은지 기자

부산 기장군 기장읍에 들어선 해수담수화시설이 2014년 12월 완공 이후 방사성 오염 우려로 물을 공급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이은지 기자

환경부 연구용역서도 복안 안 나와
시설 활용 방안을 찾기 위한 환경부 연구용역이 최근 끝났지만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다. 용역 보고서에는 ▷공업용수 생산 ▷재난 시 비상용수 생산 ▷연구개발 활용 등 방안과 이에 대한 전문가 제언이 담겼다. 이는 지난 10년간 부산시가 수차례 검토한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결과다. 부산시는 해수담수화 시설을 연구 시설인 ‘분산형 실증화 센터’로 활용하기 위해 2021년 환경부·수자원공사와 협약했지만, 여태껏 실적이 없다.

부산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에 조성된 해수 담수화 시설. 송봉근 기자

부산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에 조성된 해수 담수화 시설. 송봉근 기자

용역 결과에 나타난 공업용수 또한 원전 주변 지역 전기료 할인(50%)을 받더라도 생산 단가가 1t에 1400원이 들 것으로 예상했다. 보통의 공업용수 생산단가(1t당 420원)보다 훨씬 비싸 현실성이 떨어지는 방안이다. 지난해 6월엔 이 용역 관련 소식이 알려지며 “해수담수화 수돗물 공급에 절대 반대한다”는 주민 여론이 다시 한번 들끓었다. 여론만 자극한 연구 용역이 별다른 해결책은 찾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부산시 관계자는 “용역 결과를 검토하고 환경부 등 관계 기관과 공업용수 공급 및 연구시설 활용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