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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김창열의 세계, ‘물방울’만 보면 놓치는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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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은주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2년 전 개봉한 다큐멘터리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를 기억하시는지요. ‘물방울 화가’로 유명한 고(故) 김창열(1929~2021) 화백의 둘째 아들 김오안 감독이 프랑스 브리짓 부이요 감독과 함께 연출한 영화입니다. 50년 동안 물방울 그림을 쉬지 않고 그린 아버지를 이해해보기 위해 감독인 아들은 물방울 그림의 의미를 다각도로 탐구합니다. 영화는 그 질문에 대해 한 가지 답을 제시하지 않지만, 아버지의 그림과는 또 다른 시적인 울림으로 관객에게 상상의 문을 열어줍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캔버스에 맺힌 영롱한 물방울들이 전시장을 메웠습니다. 서울 삼청동 갤러리현대가 김 화백의 3주기를 맞아 열고 있는 전시 ‘영롱함을 넘어서’(6월 9일까지, 무료) 현장. 마대 위에 물방울이 처음 등장했던 70년대 초반 작품부터 2010년대 제작된 작품까지 김 화백의 주요 작품 38점이 전시에 나왔습니다.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이 아낀다는 물방울 그림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번 전시는 물방울의 의미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고 전합니다. “예술의 본질은 결국 일루전(Illusion)일텐데, 이것을 재검토해 보려는 게 나의 예술입니다.” 1976년 화가가 한 말을 글로 먼저 소개했습니다. 많은 사람은 그의 물방울이 “사실적”이라며 감탄하지만, 사실상 그가 이루고자 한 것은 사실의 재현 그 자체가 아니라 환상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었음을 다시 깨닫게 합니다.

김창열, 물방울, 1973, 캔버스에 유채, 199x123㎝. [사진 갤러리현대]

김창열, 물방울, 1973, 캔버스에 유채, 199x123㎝. [사진 갤러리현대]

1969년 뉴욕에서 파리로 옮겨 간 화가는 1976년 동료 화가 박서보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도 했습니다. “캔버스를 뒤집어놓고 직접 물방울을 뿌려 보았어. (···) 여기서 보여진 물방울의 개념, 그것은 하나의 점(點)이면서도 그 질감(質感)은 어떤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는 새로움의 발견이었어. 점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감도(感度)라 할까···”(『공간』, 1976년 6월호)

그에게 물방울은 철저하게 조형화된 이미지이자, 다양한 공간 구성과 질감 유희를 위한 핵심 재료였습니다. 마대나 모래, 신문, 나무판, 한지 특유의 질감, 그리고 천자문과 겹쳐지는 물방울은 그가 무궁무진한 조형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열쇠였습니다.

그동안 김창열의 물방울은 6·25 때 죽어간 많은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정화수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됐습니다. 그러나 화면 위에 맺히고, 여백을 만들고, 흐르고,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 물방울들의 다양한 변주는 그의 그림을 좁은 틀에 가두고 보지 말라고 권하는 듯합니다. 영국의 시각 이론가 존 버거(1926~2017)는 그의 저서 『다르게 보기』(최민 옮김, 열화당)에서 “말 이전에 보는 행위가 있다”면서 “이미지는 문학보다 더 정확하고 풍부하다”고 했습니다.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을 보는 시각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