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관세폭탄, 말레이 고무장갑 주가 폭등…한국 석화도 웃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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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관세를 올리며 중국을 더욱 옥죄고 있다. EPA=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관세를 올리며 중국을 더욱 옥죄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15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주식시장에서 탑 글로브(Top Glove)의 주가가 크게 뛰었다. 이날 탑 글로브의 이날 종가는 직전 거래일 대비 31.3%(종가 기준) 솟구쳤다. 탑 글로브는 세계 고무장갑 시장 점유율이 4분의 1 정도인 세계 최대 고무장갑 기업이다. 최근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 때문에 좋은 실적을 기록하지 못했는데 주가가 크게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지구 반대편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대(對) 중국 관세 정책 발표 때문이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율을 4배 높여 100%까지 올리는 방안 등을 골자로 한 대중 관세 인상안을 발표했는데, 이 중엔 수술용 고무장갑에 대한 관세율을 7.5%에서 25%로 올리는 방안도 포함됐다. 말레이시아 현지 언론 디엣지는 “(2026년 새 관세 정책이 시행되면) 말레이시아 고무장갑 제조업체들이 미국에 더 많이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말레이시아 은행인 RHB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판매하는 중국 고무장갑 제품 1000개당 가격은 16~17달러로 말레이시아 제품보다 2~3달러 저렴하다. 이런 이유로 2020년 70%에 육박했던 말레이시아 업체들의 세계 고무장갑 시장 점유율은 계속 하락 중이었다. 그러나 중국 제품에 더 많은 관세가 부과되면 말레이시아 제품이 중국 제품보다 더 저렴해질 수 있을 것으로 RHB은행은 전망했다. 이런 기대감이 탑 글로브 주가를 끌어올린 것이다.

대중국 관세 인상 주요 품목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백악관]

대중국 관세 인상 주요 품목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백악관]

한국 석화 업계가 웃는 이유는 

미 관세발 기대감은 한국 석유화학 업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수술용 고무장갑의 원료인 NB(니트릴 부타디엔)라텍스를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이 말레이시아에 수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재성·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지난 16일 ‘석유화학·태양광·2차전지-미국의 대중국 관세 인상에 따른 영향 점검’ 보고서에서 “한국의 NB라텍스 수출은 말레이시아 향(向)이 70~80%였으나 말레이시아 장갑 업체의 경쟁력 약화로 그 비중을 지속적으로 축소해 NB라텍스 가동률도 50%에 그쳤다”며 “하지만 이번 (바이든 행정부의) 조치에 따른 말레이시아 장갑 업체의 중장기 경쟁력 회복 가능성은 글로벌 1위 NB라텍스 업체이자 말레이시아 최대 수출업체인 국내 업체에도 긍정적인 소식”이라고 평가했다.

석유화학 업체가 밀집해 있는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업단지에서 하얀 수증기가 올라오고 있는 모습. 연합뉴

석유화학 업체가 밀집해 있는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업단지에서 하얀 수증기가 올라오고 있는 모습. 연합뉴

국내에선 금호석유화학과 LG화학이 NB라텍스를 생산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며, LG화학은 3위다.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최근 업황 부진을 겪고 있는 석유화학 업계지만, NB라텍스 사업은 호황이다. 지난달 NB라텍스 수출량은 말레이시아 등에서 재고 확보 움직임이 나타나며 전월대비 30%, 전년 같은 달 대비 75% 늘어 3년여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여기에 판매가격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과 LG화학의 영업이익에서 NB라텍스 기여도는 올 1분기를 기점으로 점차 높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윤재성·김현수 연구원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관세 인상 조치를 고려하면 중장기적으로 추가적인 수출량 회복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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