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만 세 시간…대안은 없을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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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0호 24면

왜 우리는 매일 거대도시로 향하는가

왜 우리는 매일 거대도시로 향하는가

왜 우리는 매일 거대도시로 향하는가
정희원·전현우 지음
김영사

2023년 통계청의 근로자 이동행태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직장인의 통근시간은 매일 평균 83.2분이나 된다. 서울 내 출퇴근자를 포함한 평균치여서 체감 통근시간은 이보다 훨씬 길 것이다. 국토교통부, 한국교통안전공단 수집 교통카드 데이터에 따르면 2019년 경기도-서울 편도 출근 시간은 1시간24분, 인천-서울은 편도 1시간30분 소요됐다. 하루 평균 3시간을 출퇴근에 사용하는 셈이다.

『왜 우리는 매일 거대도시로 향하는가』는 이처럼 매일매일 힘겹게 출퇴근을 하거나 꽉 막힌 도로를 이동해야 하는 도시민들의 애로를 저자들의 실제 경험을 통해 짚어 보고 그 대안을 제시한 책이다. 가속노화 방지를 연구하는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임상조교수와 교통·철학연구자 전현우는 이동의 문제를 오래전부터 공감하고 아홉 가지 주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도로와 운전문화, 대중교통의 문제와 개선점을 깊이 있게 논의했다.

내 앞으로 가득 쌓인 빨간 브레이크등의 끝없는 행렬, 꼬리물기와 끼어들기로 난장판이 되는 도로, 주말마다 겪는 기차표 전쟁, 고속도로의 유령정체와

1차선 정속주행 등은 우리를 스트레스와 가속노화의 세계로 내모는 강적들이다. 2021년 서울시내 도로의 평균 주행속도는 시속 23㎞였으며 매년 더 느려지는 추세다.

대형고급차와 상위 트림을 선호하는 ‘거함거포주의’, 차량에서 내렸을 때 주변의 부러움 섞인 시선을 받으며 얻게 되는 우쭐한 감각을 일컫는 ‘하차감’이 유독 중요시되는 한국에서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위계와 지위를 과시하는 재화로서 기능한다. 자동차 산업은 이런 심리적 인프라를 토대로 성장을 거듭해 왔지만 그럴수록 도로의 몸살은 배가돼 왔다.

이 책은 중앙일보에서 최근 다룬 ‘출퇴근 지옥’이라는 기획연재를 인용하며 왕복 통근 시간이 2시간 이상인 사람들은 30분 이하인 경우보다 1.47배 우울하고 2.03배 불안하며 2.12배 더욱 피로했다는 연구(경희대 직업환경의학과) 결과를 소개하기도 했다. 길고 고통스러운 이동은 수면부족과 스트레스 등으로 만성질환의 원인이 된다는 연구도 나와 있다.

지은이들은 대중교통의 대폭 확대와 편의성 제고, 철도 교통 확대, 자동차 운행 축소 등이 시급히 시행돼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하는 곳과 거주하는 곳이 붙어 있는 직주근접이 이상적인 대안이긴 하지만 수도권의 치솟는 집값 때문에 언감생심이다. 저자들은  걷기와 철도의 결합이 결국 기후위기 시대 거대도시에서 이동하는 기본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외침은 잘 수용되지 않고 묻혀 버리기 일쑤였다고 한탄한다.

심각한 저출산으로 앞으로 한국의 인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크지만 수도권의 교통지옥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 나은 교통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겠지만 당장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안들도 없지는 않다.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사람을 늘리고 ‘건강한 이동’과 ‘건강한 사회’를 위한 묘책의 실마리를 풀어 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한경환 자유기고가 khhan8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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