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에디터 프리즘] 명분과 실리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89호 30면

최익재 국제선임기자

최익재 국제선임기자

중동 정세가 살얼음판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인 하마스와의 전쟁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으로 시작된 이번 전쟁은 7개월이 지난 지금도 진행형이다. 가자지구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이 시작되면서 긴장감은 최고조로 치솟고 있다. 하마스의 뿌리를 뽑겠다는 강경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뚝심이 전쟁을 이끄는 동력이 되고 있는 듯하다.

이번 전쟁으로 인해 주변국은 물론 국제사회도 작지 않은 영향을 받고 있다. 미국에선 대학가를 중심으로 반전 시위가 격하게 벌어지면서 오는 11월 대선에 나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불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미국 대선판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중동의 주변국들도 이번 전쟁의 불똥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중 갈등 속 이달 한·중·일 회의
국익 극대화 위한 전략 준비해야

이런 가운데 지난달 국제사회가 크게 긴장한 주목할 만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스라엘과 이란 간 군사적 충돌이다. 이스라엘이 지난달 1일 시리아에 있는 이란 영사관을 공습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후 보복에 나선 이란은 같은 달 13일 300여 발의 미사일과 드론을 동원해 이스라엘 영토를 공격했다. 이란의 이스라엘 본토 공격은 처음이었다. 19일에는 이스라엘이 이란을 다시 공격했다. 이를 지켜보는 국제사회는 자칫 5차 중동전쟁으로 번질까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현재까지 별다른 후속 공격은 없었다. 다행히 양국 간 충돌이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두 나라는 공존이 힘들 정도의 앙숙 관계다. 이런 양국이 권투에서 스파링하듯 가볍게 잽만 몇 번 날리고 공격을 접은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 중 하나는 ‘명분과 실리’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이다.

실제 국제 관계에서 명분과 실리 모두를 만족스럽게 챙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스라엘과 이란 수뇌부도 이를 잘 알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가 주도하는 전시내각 입장에서 주적인 하마스 소탕을 위해 이란과의 전면전은 꼭 피해야 할 옵션인 것이다. 전선의 확대로 자칫 전쟁의 주 타깃이 분산돼 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의 권부도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이 서방의 경제제재로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 상황을 악화시켜 민심 이반을 더욱 부채질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둘 다 군사적 강경 대응이 득보다는 실이 더 많다고 판단하고, 명분보다 실리를 택한 것이다. 두 나라가 거창한 비난 성명에 걸맞지 않게 체면치레 수준의 공격만 했던 이유다. 전쟁을 하더라도 실리를 따져 보고 전략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이처럼 국제무대에서는 명분도 국익 극대화라는 관점에서 재평가되곤 한다. 철저한 계산에 따라 실리를 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윤석열 정부는 ‘전략적 선명성’을 앞세운 외교 정책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런 평가가 명분론에 대한 집착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한·미 관계가 중요하다는 명분이 다른 주변 강국과의 관계에 악영향을 줘선 안된다는 의미다. 외교에서는 뭉뚱그린 명분론보다 주변 강국들과의 맨투맨 외교에서 얻을 수 있는 실리를 명확히 따지는 전략의 내실이 크다.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외교의 정체성을 이런 관점에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달 말 한·중·일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린다. 2019년 12월 이후 4년여 만에 열리는 3국 간 다자 외교무대다. 특히 미·중 갈등이 심화된 가운데 열리는 만큼 윤석열 정부에겐 아주 미묘한 자리가 될 수 있다. 좋은 기회가 될지, 서로의 간극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지는 우리가 준비한 전략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작금의 국제 정치·외교의 기저에는 항상 선택적 명분과 선택적 정의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