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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축정책의 이득은 상위 1%에 돌아간다? 도발적 주장의 이유[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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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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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질서
클라라 E 마테이 지음
임경은 옮김
21세기북스

정부가 재정부족에 맞닥뜨리면 빚을 줄이고 민간산업 성장을 촉진한다는 명목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공공서비스부터 지출을 줄이는 건 현대 세계에선 흔한 일이다. 하지만 미국의 진보 성향 대학 더뉴스쿨의 경제학 교수인 지은이는 긴축 정책에 부정적이다. 국민 고통, 부채감소‧성장촉진 효과의 불확실성, 그리고 그 배후에 숨어있는 자본주의 체제 수호를 위한 불평등 유발이라는 세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긴축정책으로 예산을 삭감하면 공공의료‧공교육‧주거‧실업 등 복지지출 감소로 시작해 디플레이션‧역진세, 넓게는 임금억제와 고용규제 완화, 민영화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노동계급에겐 불리하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난달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공립 대학에 대한 더 많은 자금 지원을 요구하고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제안한 긴축 조치에 항의하기 위해 카사 로사다 대통령궁 밖에 모인 시위자들.[AP=연합뉴스]

지난달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공립 대학에 대한 더 많은 자금 지원을 요구하고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제안한 긴축 조치에 항의하기 위해 카사 로사다 대통령궁 밖에 모인 시위자들.[AP=연합뉴스]

공정성은 직격탄을 맞는다. 미국에선 모두가 부담하는 소비세 세수는 증가일로지만, 부자들에게만 해당하는 상위소득세율은 1950년대 91%에서 현재 37%로 줄었다. 그 결과 미국 최상위권 총세율이 어떤 계층보다 낮은, 역진세율이 나타났다.

이런 고통에도 긴축 효과는 의문이다. 미국 브라운대의 정치경제학자 마크 블리스는 역사적 분석을 통해 긴축이 정부부채 감소와 민간 성장촉진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효과적이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고통을 감수해도 인플레 등 경제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

이런 부작용에도 각국 정부는 왜 긴축이라는 칼을 반복적으로 뽑아온 것일까. 지은이에 따르면 그 배경에는 기득권층 재산과 민간기업의 노동자 지배권 확보가 경제성장을 이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이렇게 긴축은 자본주의 체제를 위기에서 지키는 핵심 보루로 자리 잡았다.

여기서 자본주의 위기는 저성장‧고인플레 같은 경제 문제가 아니라 대중의 체제 도전을 가리킨다. 생산수단 사유화 및 고용주-노동자 관계라는 ‘자본주의의 두 기둥’이나 이윤추구라는 핵심에 대중이 이의를 제기하는 걸 진정한 위기로 본다.

'자본 질서'의 저자 클라라 E 마테이. [사진 claramattei.com, 21세기북스]

'자본 질서'의 저자 클라라 E 마테이. [사진 claramattei.com, 21세기북스]

지은이는 1차 세계대전 참전과 전시동원으로 자본주의에 의문을 품게 된 노동계층이 일터에 돌아와 새로운 산업 질서와 평등을 요구한 1920년대를 긴축의 뿌리로 본다. 당시 서구의 경제학자와 기술관료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기득권층의 이익을 지키고 하층민의 도전에 대응하려고 긴축을 고안했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1919년 브뤼셀, 1922년 제노바에서 국제재정회의도 열었다. 그들만을 위해 작동하는 ‘자본 질서’는 이렇게 자리를 잡아갔다. 임금과 개인 지출을 제약당한 노동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히 저축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은이는 1920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였던 영국과 파시즘이 태동한 이탈리아 모두에서 긴축을 정치경제적 도구로 활용했음에 주목한다.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즘이 득세한 이탈리아에선 이론가이자 활동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자본주의적 계층관계는 물론 하향식 지식생산도 부정했다. ‘자본주의국가를 지탱하는 문화적 헤게모니’ ‘노동자 대중교육을 통한 노동계급 지식인 양성’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분리’ ‘노동계급과 시민사회의 통합’ 등의 개념이 투쟁 속에서 나왔다. 검사는 그런 그에게 ‘머리를 쓰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장기형을 구형했다.

극우 무장세력이 이탈리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무덤 앞에서 2016년 파시스트 경례를 하는 모습.[AFP=연합뉴스]

극우 무장세력이 이탈리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무덤 앞에서 2016년 파시스트 경례를 하는 모습.[AFP=연합뉴스]

영국에선 재무성이 긴축을 이끌었다. 그 결과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노동자에 대한 구조적 착취는 심화했다. 국민소득에서 이윤 비율과 임금 비율을 비교해도, 노동생산성 대비 임금을 살펴도 모두 노동계층에 불리했다.

1920년대나 지금이나 긴축의 이득은 상위 1%에게 돌아가고, 폐해는 임금과 사회보장에 의지하는 하위 60%에게 돌아간다는 지은이의 지적을 세상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원제 The Capital Order: How Economists Invented Austerity and Paved the Way to Fas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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