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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불임금 40% 불어났는데…처벌안은 폐기 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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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솜방망이 처벌에 불경기까지 겹치면서 임금 체불 규모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상습적인 체불 사업주를 실질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임금체불방지법안 처리는 정쟁에 휘말려 폐기 위기에 놓여있다.

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 1분기 체불임금 발생액은 571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3% 증가했다. 이런 추세가 연말까지 지속하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해 체불액(1조7845억원)을 뛰어넘어 2조원을 돌파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임금체불은 불경기 영향을 받는 만큼 올해도 건설업을 중심으로 체불액 증가 폭이 커질 우려가 나온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 3월 폐업 신고를 한 종합건설사는 전년 동월 대비 25.3% 늘어난 104곳으로 집계됐다. 지난해의 경우 건설업 임금체불은 전년 대비 49.2% 증가하면서 전체 증가율(32.5%)을 크게 상회했다.

정부는 ‘무관용 원칙’으로 임금 체불을 철저히 단속하겠다는 입장이다. 고용부는 최근 ‘임금 체불 신고사건 처리 지침’을 만들어 체불 사업주의 부동산·예금 등 재산 관계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고, 출석을 거부하거나 지급 여력이 있음에도 고의·상습 체불 사업주에 대해선 체포영장 및 구속수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매년 체불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보다 근본적인 법·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에 여야 모두 현행 근로기준법을 대폭 개선하는 임금체불방지법을 발의했다.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인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재직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미지급 임금에 대해서도 지연이자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법상 지연이자는 퇴직하거나 사망한 근로자에게만 적용되다 보니 사업주들에게 ‘재직자에겐 늦게 돌려줘도 괜찮다’는 인식을 심어준다는 지적이 많았다.

앞서 환노위 야당 간사인 이수진 민주당 의원도 지연이자 확대 적용뿐만 아니라 체불 사업주에 대한 징벌적 배상, 반의사불벌죄 규정 축소 등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법은 체불 피해 당사자가 원하지 않으면 사업주를 처벌할 수 없다. 사업주에게 합의 동기를 제공해 원활한 청산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5년부터 반의사불벌 조항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실제 체불액보다 적은 금액으로 합의를 종용하거나, 합의 성사 이후 임금을 돌려주지 않는 등의 악용 사례가 나타나면서 노동계를 중심으로 반의사불벌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여야가 법안 처리 대신 정쟁에 몰두하면서 임금체불방지법은 폐기 기로에 놓여있다.

환노위는 지난 7일 전체회의를 열었지만, 야당의 ‘채 상병 특검법’ 강행 처리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여당 의원이 전원 불참하면서 법안 처리가 무산됐다. 민주당 관계자는 “중요한 민생 법안들인 만큼 오는 28일 열릴 본회의 전까지 법안소위와 전체회의를 열고 상정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여야 대치가 장기화할 경우 모두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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