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 속 아련한 노을…철새도 반해 자고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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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진우석의 Wild Korea ⑬ 충남 보령 외연도

보령 외연도는 충남에서 내로라하는 멋진 섬이다. 특히 해 질 무렵 풍광은 한 번도 실망스러웠던 적이 없다. 사진은 봉화산에서 내려다본 소청도다. 마치 고래가 헤엄치는 것 같다. 해무가 밀려오고, 시나브로 노을이 지면서 몽환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보령 외연도는 충남에서 내로라하는 멋진 섬이다. 특히 해 질 무렵 풍광은 한 번도 실망스러웠던 적이 없다. 사진은 봉화산에서 내려다본 소청도다. 마치 고래가 헤엄치는 것 같다. 해무가 밀려오고, 시나브로 노을이 지면서 몽환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새들이 왔다. 삼세번 만에 때를 맞췄다. 처음 외연도를 찾았을 때는 3월이라 새가 안 왔고, 다음은 5월 말이라 새가 떠나고 없었다. 철새가 잠시 머무는 4~5월의 외연도는 활기가 넘친다. 섬은 연둣빛 신록으로 부풀어 오르고, 탐조 동호회원들은 어여쁜 새들 볼 생각에 들뜬다. 해변 데크에서 캠핑하면서 철새처럼 하룻밤을 보냈다.

외연도, 충남 섬의 자존심

봉화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서면 외연도가 한눈에 보인다.

봉화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서면 외연도가 한눈에 보인다.

충청남도에는 내세울 만한 섬이 많지 않다. 하지만 보령군 외연도는 섬 천국인 전남 신안이나 진도에 내놓아도 이쁨받을 만하다. 외연도는 알음알음 알려진 백패킹 성지다. 텐트 치기 좋은 데크 전망대가 해변 곳곳에 흩어져 있어서다.

대천항을 떠난 여객선이 3시간 만에 외연도에 닿았다. 금요일인데도 큰 배낭 멘 사람은 나 혼자다. 외연도 해변이 몽땅 내 것이라는 생각에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섬에서 하나뿐인 ‘평화슈퍼’에서 물과 라면을 사고, 식당에서 어젯밤 앞바다에서 캤다는 바지락을 샀다. 마을로 들어서자 배에서 봤던 탐조 동호회원들이 정신없이 새 관찰 중이다.

“새 많이 왔어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 텐트 밖으로 나오니, 휘영청 달이 떠 있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 텐트 밖으로 나오니, 휘영청 달이 떠 있었다.

망원경으로 새를 관찰하는 머리 희끗희끗한 사내에게 물었다. 그는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한참 만에 “볼 만해요”라고 말했다. 외연도는 남쪽에서 올라오는 통과 철새의 중간 기착지다. 봄에는 멧새류가 대세다. 참새처럼 작은 새로, 20여종이 있는데 그 중 13종을 외연도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배낭을 내려놓고 동호회원들과 새 구경에 몰두한다. 찧고, 까불고, 날고, 먹고, 몸치장하는 모습이 앙증맞다. 외연도를 찾은 철새는 15~30일쯤 머물다가 떠난다. 작고 여린 몸으로 바다를 건너 먼 길을 떠난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봉화산에서 만난 몽환적 노을

주황색 털이 귀여운 황금새.

주황색 털이 귀여운 황금새.

외연도의 일몰 명소인 ‘노랑배’ 근처에 텐트를 쳤다. 노란색을 띤 암석이 배처럼 생겼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외연도에는 지도에 안 나오는 재미난 지명이 많다. 산길을 30분쯤 올라 봉화산 정상에 닿으니 서쪽 조망이 시원하게 열렸다. 작은 섬 소청도가 헤엄치는 고래처럼 보인다. 먼바다는 해무가 살짝 껴 오묘하게 빛난다.

스멀스멀 몰려온 해무가 소청도 일대를 뒤덮었다. 외연도란 이름도 해무와 관련이 있다. 연기에 가린 듯 까마득하게 보인다는 뜻이다. 해무 속에서 노을이 지니 몽환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외연도의 노을은 나를 실망하게 한 적이 없다.

텐트로 돌아왔다. 서둘러 바지락을 넣고 라면을 끓인다. 저물었는데도 빛나는 바다를 보면서 한 젓가락, 어둠이 빛을 집어삼키는 걸 보면서 또 한 젓가락. 반짝이는 별과 휘영청 뜬 달을 보며 만찬을 즐겼다.

망재산 아래 바다와 만나는 지점의 고래조지.

망재산 아래 바다와 만나는 지점의 고래조지.

이튿날 아침, 가볍게 짐을 꾸려 트레킹에 나선다. 약수터에서 조금 내려가면 만나는 ‘작은 명금’은 몽돌 해안이다. 외연도에서 유일하게 해수욕을 즐기는 곳이다. 작은 명금 옆의 ‘돌삭금’은 커다란 거친 돌이 흩어져 있다. 여기가 주민들의 양식장이다. 홍합과 전복 품질이 최상급이란다.

돌삭금에서 길은 마을을 거쳐 망재산 입구에 닿는다. 그윽한 대숲과 울창한 숲길을 통과하면 정상에 닿는다. 예전에는 마을이 잘 보였는데, 관목이 들어차 시야를 가린다.

노랑배·고래조지…재미난 지명

정상에서 내려오면 울창한 소사나무 숲을 통과한다. 구불구불 길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시야가 열리면서 드넓은 초지가 펼쳐진다. 여기가 ‘고래조지’다. 바위가 고래의 생식기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앞쪽으로 무인도인 횡견도·대청도·중청도가 차례로 펼쳐지고, 그 앞을 어선이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풍경이 한없이 평화롭다.

다시 둘레길을 따른다. 고래조지에서 ‘고라금’으로 이어진 부드러운 오솔길은 바다를 끼고 걷는다. 식생이 좋고 부드럽게 굴곡져 걷는 맛이 일품이다. 이 길을 뚝 잘라다가 나의 ‘길 노트’에 책갈피처럼 껴 넣고 싶다.

섬 중앙에 자리한 당산. 전횡장군을 기리는 사당이 있다.

섬 중앙에 자리한 당산. 전횡장군을 기리는 사당이 있다.

고라금에서 길은 당산으로 이어진다. 당산은 주민들이 제사 지내는 신성한 공간이다. 천연기념물 당산 숲에는 푸조나무·자귀나무·팽나무 등 활엽수와 후박나무·동백나무·붉은가시나무 등 상록수가 어우러진다. 나무마다 내뿜는 각양각색 신록의 물결에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당산에는 전횡장군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 중국 제나라 왕의 동생인 전횡장군은 나라가 망하자 군사 500여 명과 함께 쫓기다가 외연도에서 닿았다고 한다. 이후 한 고조가 그를 불렀지만 신하가 되기를 거부하고 자결했고 부하 500명도 함께 순절했다.

노랑배로 돌아와 텐트를 정리한다. 외연도는 철새에게도, 쉼이 필요한 백패커에게도 야박하지 않다. 자신의 품에서 쉬게 하고, 어깨를 토닥토닥 다독여 먼 길 떠나게 한다.

여행정보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캠핑사이트는 돌삭금, 노랑배, 약수터 등이 좋다. 인기 장소였던 고라금은 데크가 없어졌다. 트레킹은 캠핑사이트를 기점으로 한 바퀴 돈다. 이번엔 노랑배~봉화산~돌삭금~망재산~고래조지~당산~노랑배 코스를 걸었다. 거리는 11.5㎞, 4시간30분쯤 걸린다. 보령 대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외연도 가는 해랑호가 하루 한 번(오전 11시 또는 정오) 운행한다. 6월 이후 기존에 다니던 배가 수리되면 하루 2회로 는다. ‘상록수림맛집’에서 활어회와 영양솥밥을 먹을 수 있다.

진우석 여행작가

진우석 여행작가

글·사진=진우석 여행작가 mtswam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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