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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도 없이 어디 갔나 했어요…코치 된 ‘월드 리베로’ 여오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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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남자배구 ‘최고의 리베로’에서 여자배구 IBK 기업은행 코치로 변신한 여오현. 20년 간 625경기를 뛴 경험을 바탕으로 “소통을 잘하는 지도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진 한국배구연맹]

남자배구 ‘최고의 리베로’에서 여자배구 IBK 기업은행 코치로 변신한 여오현. 20년 간 625경기를 뛴 경험을 바탕으로 “소통을 잘하는 지도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진 한국배구연맹]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소통을 잘하는 지도자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8일(한국시간) 2024 한국배구연맹(KOVO) 여자부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이 열린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NAS 스포츠 콤플렉스.

지난 시즌을 끝으로 남자배구 현대캐피탈의 유니폼을 벗고 여자배구 IBK기업은행 코치로 변신한 여오현(46·사진)은 힘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여오현 코치는 이제 팀에 합류한 지 보름도 안 된 ‘새내기 코치’다. 4월 29일 아시아쿼터 드래프트 때 본격적으로 코치 업무를 시작했다.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 참가하느라 팀 선수들과 함께 훈련한 시간은 사흘밖에 되지 않았다. 여 코치는 “여자부 선수들 영상을 많이 봤다. 내가 생각한 것과 달라서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여오현 코치는 현역 시절 ‘기록의 사나이’로 불렸다. 2005년 V-리그 원년부터 2023~2024시즌까지 무려 20시즌 동안 현역으로 뛰었다. 주로 리베로로 활약하면서 역대 최다인 625경기를 뛰었고, 리시브 정확 1위(8005개), 디그 성공 1위(5219개)에도 올랐다. 지난 시즌에도 22경기에 출전하면서 노익장을 과시했다. 45세에 은퇴하겠다는 ‘45세 프로젝트’도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여오현 코치는 “45세나 600경기 같은 타이틀보다는 한 시즌도 쉬지 않고 출전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최고의 리베로’ 여오현이 지도자로 변신한 것은 김호철 IBK기업은행 감독의 제안이 계기가 됐다. 김호철 감독은 “여오현 코치는 40대까지 선수로 활동할 만큼 자기 관리를 잘한다. 앞으로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선수들이 수비와 리시브 면에서 여 코치로부터 배우는 게 많을 것이다. 그런 점을 기대하고 영입했다”고 설명했다.

여오현.

여오현.

여오현 코치는 “감사한 마음도 들었지만, 두려움이 더 컸다.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감독님한테 누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잘할 수 있을 것’이라며 격려해주셔서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여 코치는 선수 시절 유광우(대한항공·11회)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우승(9회)을 차지했다. 아쉽게도 열 번째 우승반지는 끼지 못했다. 여 코치는 “그게 마음이 아프다. 솔직히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선수로 뛰면서 꼭 10번째 우승을 차지하고 싶었는데 마지막 한 조각의 퍼즐을 남겨 놓고 은퇴해 아쉽다”고 말했다.

여오현 코치의 아들인 여광우(송산고 3)는 아버지와 똑같은 리베로로 뛰고 있다. 여 코치가 조금 더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아들 여광우가 고교 졸업 후 드래프트에 나선다면 부자가 코트에서 함께 뛰는 일도 가능했다. 여 코치는 “아들이 ‘레알(진짜)? 아빠 왜?’라고 묻더라. 그래서 ‘아빠는 이제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했다’고 설명해줬다”고 털어놨다.

삼성화재를 거쳐 현대캐피탈에서 활약했던 여오현 코치는 천안 팬들에게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현역 유니폼을 벗었다. 여 코치는 “멀리 떠나는 것도 아니고 배구계에 있으니까 언제든 팬들께 정식으로 인사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그동안 많이 응원해주셔서 감사했다. 앞으로 지도자로서 성공할 수 있게 응원해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코트를 뛰어다녔던 여 코치는 이어 “여자부는 처음인데 김호철 감독님이 ‘배구는 어차피 똑같이 선수가 하는 것이고,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선수들에게 열정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옆에서 돕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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