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친구가 왜 싫겠니 ? 헤어짐이 두려웠을 뿐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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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왕따

이윤학 지음, 전종문 그림, 문학과 지성사

228쪽, 8500원, 초등 고학년 이상

'오해받는 건 힘든 일이지만 친해지는 것보다 나은 일인지도 몰랐다. 친구를 사귀는 일보다 힘든 건 친구와 헤어지는 일이니까.'

전학을 자주 다니던 주인공 임미나는 친구와 헤어지는 게 힘들어 새 학교에선 아예 친구를 사귀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반의 짱인 장가연은 그런 미나가 잘난 척한다고 여겨 그녀를 괴롭힌다. 미나가 아버지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분홍 구두를 반쪽으로 잘라 화장실 물통에 빠뜨리고, 체육복에 구멍을 내놓기도 한다. 서슬 퍼런 장가연의 눈치를 보는 아이들 때문에 미나는 왕따가 된다. 미나 스스로도 장가연에게 굴복하느니 왕따가 되는 길을 선택한다. 그러나 왕따의 생활은 결코 쉽지 않다. 보험회사에서 일하느라 바쁜 엄마, 해외에서 돈을 버는 아빠에겐 속을 털어놓을 기회도 없다.

아이들이 천진난만하다고? 천만의 말씀. 아이들의 사회는 그야말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글이다. 장가연은 키가 크고 힘도 세다. 게다가 읍내에서 제일가는 부잣집 딸이다. 그녀는 "너희 엄마가 우리 집에 와서 보험 하나 들어달라고 애원하더라"며 미나를 모욕한다. 이전에 왕따 당하던 아이는 미나 때문에 자신이 괴로움을 면했다며 안도한다.

끊임없는 괴롭힘 때문에 미나는 점심시간이면 개구멍으로 학교를 빠져나가 무덤 앞에서 밥을 먹고, 플라타너스 나무 밑둥에 못을 박으며 화풀이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장가연의 패거리 중에서 가장 순해 보이는 김성령이 미나에게 "괜찮다면 너랑 같이 밥 먹고 싶다"며 손을 내민다. 처음으로 친구가 생겼다는 희망에 들뜬 것도 잠시, 김성령은 장가연 일당을 데리고 미나의 아지트로 찾아온다. 김성령은 미나가 혼자 있는 장소를 알아내려 연극을 했던 것이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인 미나에게도 의지할 곳이 생긴다. 미나는 아이들 사이에선 '아이를 땅에 묻는 귀신 할머니'로 소문난 외톨이 할머니를 만난다. 마냥 가슴이 넓고 따뜻한 할머니는 아니다. 사람 만나는 게 싫어 외딴 곳에 집을 지어놓고 혼자 사는 할머니와 친구 사귀기를 거부하는 미나는 서로 닮았다. 미나와 할머니는 서툴게 마음을 열어나가며 서로 정이 든다. 할머니는 외톨이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고, 미나도 닫힌 마음의 문을 연다. 미나는 화풀이 상대였던 플라타너스 나무를 찾아간다. 나무에 박은 못을 빼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큰 흠집이 생겼다. 나무는 박힌 못을 끌어안은 채 자라나 있었던 것이다.

상처를 입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크든 작든 흉터를 남기면서도 언젠가는 아무는 게 또 상처다. "내가 받을 상처를 미리 아파했는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말처럼, 상처받기 두려워 미리 움츠러든 적은 없을까. 못박힌 플라타너스 나무처럼 상처마저 한몸인 듯 끌어안고 자라나 어른이 되는 법인데 말이다. 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이윤학 시인의 두 번째 장편 동화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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