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가난 벗어나는 열쇠 '인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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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희망의 인문학

얼 쇼리스 지음

고병헌 외 옮김, 이매진 448쪽, 1만6500원

노숙자. 전과자들에게 플라톤을 강의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단 모두들 비웃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 그런 일이 벌어졌다.

1995년 미국 뉴욕시 클레멘트 거리에서 20여 명의 사회 최하층 사람들 앞에서 저명한 언론인이자 사회비평가. 대학강사인 얼 쇼리스가 철학 강의를 시작했다. 오늘날 4개 대륙 6개국 57곳에서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에게 철학.논리학.역사.예술론 등 인문학 강의를 통해 희망을 심고 있는 '클레멘트 코스'의 첫 걸음이었다.

이 책은 창설자인 얼 쇼리스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규 대학 수준의 인문학 강좌인 클레멘트 코스를 열게 된 과정.교육내용.성과 등을 기록한 것이다. 그가 구상한 것은 교도소에서 만난 한 여죄수와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사람들이 왜 가난할까요?"란 쇼리스의 질문에 할렘가 출신의 비니스 워커라는 죄수는 "시내 중심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정신적 삶이 우리에겐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지은이는 여기서 가난한 사람들이 연주회와 공연, 박물관, 강연 등 중산층이 흔히 접할 수 있는 '인문학'을 접하기가 힘듦을 새삼 깊이 있게 사고하는 법, 현명하게 판단하는 법을 몰라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클레멘트 코스를 시작했다.

이 책은 두 가지로 읽을 수 있다. 빈곤의 원인, 의미 등 빈곤에 관한 사회적 성찰을 얻고 싶으면 처음부터, 클레멘트 코스의 감동적 자취를 함께하고 싶으면 11장부터 읽으면 된다. 10장까지는 빈곤과 불평등의 사회적 함의를 분석한 이론서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체가 풍성한 인문학 성과이므로 가능하면 첫 장부터 읽기를 권한다. "인문학이 여러분을 부자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단, 돈을 많이 벌게 해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삶이 훨씬 풍요로워진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란 책의 구절을 믿는다면.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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