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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 376년간의 역사 한눈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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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칼 베커라는 미국의 역사학자가 남긴『모든 사람은 자신의 역사가』라는 논문이 오랜 기억으로 남아있다.
역사를 전공으로 하지 않는 사람도 마치 자신의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를 쓰듯 역사를 쓸 수 있고 그런 개인사들이 모여 역사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칼 베커는 제시했다.
물론 그의 의도는 진정한 역사 전문가란 아마추어 역사가를 뛰어넘는 탁월한 역사인식과 서술방식을 지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있었지만, 직업으로서의 역사를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있어 역사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를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역사를 기술하는 사람에겐 엄정한 사실과 불편 부당의 객관성을 준열히 요구하지만 역사를 읽는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일기장을 대하듯, 자신의 조상과 뿌리를 찾듯,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 위하여 역사책을 만나게 된다.
역사서에 대한 기대와 효용성은 이렇듯 동서양을 막론하고 서로 어긋난다. 객관적으로써 자기를 기대하면서 주관적으로 역사를 파악코자 한다. 춘추필법의 냉엄성을 요구하면서도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 인간드라마와 휴머니티, 그리고 뭔가 자신에게 유용한 교훈을 찾으려 한다.
몸젠의『고대사연구』보다 기번의『로마제국 쇠망사』가 고전으로 회자되고 어떤 러시아 연구서보다도 E H 카의『트로·츠키평부』이 박진감주는 혁명사연구로 꼽히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고『희랍신화』와『플루타크 영웅전』이 불멸의 고전으로 추앙되는 연유도 같은 맥락이다.
동양 역사서의 불후 명작으로 꼽히는 사마천의『사기』가1백30권으로 구성된 방대한 역사서이지만 중요한 본기나 세가 연표보다도 열전이 단연 돋보이고 읽혀지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삼라만상이 역사를 이루는 요인이겠지만 역시 역사란 인간이 만들어내는 창조물이면서 그 퇴적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들 인간이 만들어낸 드라마가 오늘의 이 시점에서 또는 내일의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 있어 어떤 의미와 교훈을 주는가에 역사를 읽는 일반인의 관심은 모여지게 마련이다.
역사적 사실의 객관성을 살리면서 소설적 형식으로 리얼리티를 살리는 역사서의 대표로서 모두가『삼국지』와『열국지』를 꼽는 이유도 여사에 대한 일반인의 기대와 효용성이 이런 배경으로 짜여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삼국지와 열국지 모두 동양인의 지혜와 행동의 총화를 담은 고전이라고 하지만, 개인적 독서 체험으로는 청년기 이전에는 삼국지에 심취하고 청년기를 지나 나이가 들수록 열국지에 매료당함은 어쩔 수가 없다.
그 이유를 두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열국지는 노랫소리만 듣고 무고한 아낙을 죽이는 혼미한 주맹 왕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 진시 왕이 천하를 통일하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삼국지의 구성이 도원결의 3형체와 몇몇 제후간의 다툼으로 이뤄지는 비교적 단순한 구성임에 비해 열국지는 무려 3백70년에 이르는 춘추시대의 역사를 통합하는 복잡 다기한 구성으로 이뤄진다.
삼국지의 등장인물이 많다하지만 열국지에 비할 수가 없다. 등장인물이 많은 만큼 그들이 쌓아 가는 역사와 드라마가 끝없이 이어진다.
삼국지는 다분히 작가의 상상력과 주관이 개입된 상당부분의 윤색과 소설적 기승전결로 구성되었음에 비해 열국지는 역사적 사실을 평이한 문체와 간편한 에피소드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실감 있게 전달해준다.
또 삼국지가 권선징악에 치우친 가치관을 배경에 철저하게 깔고 있음에 비해 열국지는 선과 악, 무용과 지용, 범부와 제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펼쳐 보인다. 삼국지의 독자와 열국지의 독자가 세대간의 차이를 보이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열국지가 그냥 방만한 형태로 기록된 잡동사니는 아니다. 편년체 형식으로 시대 순서에 따라 진행되면서 수백 수천의 등장인물이 제각기 개성을 지니면서 그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절묘한 기술방식을 취하고 있다.
왜 오자서는 조국을 등지고 망명길에 오르면서 갖은 고초를 겪고 다시 재상의 자리에 오르는지, 손자병법과 손독의 기막힌 사정들, 열국지의 말미를 장식하는 연나라 태자 단의 절치부심 하는 진왕 타도정책, 그리고 천하의 테러리스트 형가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의 흥미를 능가하고 어떤 역사서도 따를 수 없는 교훈을 독자에게 전해주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열국지는 여러 판형이 있다고 한다. 오계당의『동주열국지』(향항 판)가 있고『증도동주열국지』(상해 판)등이 있다. 우리 나라에 알려진 판본은 동주열국지로 김구용 선생이 65년에 번역 발간했다가 최근 다시 이를 보완해 내놓았다.
불행히도 우리는 열국지의 작자가 누군지 모른다. 다만 확실한 사실은 좌구명의 좌전을 읽어봐도 중요한 사실은 열국지와 일치하고 더러는 여씨 춘추 또는 열녀전 국책에도 중복되는 사실이 나타난다.
짐작컨대 후세의 어느 뛰어난 박학문장가가 이들 역사서를 섭렵, 망라해 소설적 구성으로 집대성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우리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새로운 질서 재편의 각축시대로 접어드는 긴박한 시점에서 무질서·무 규범·무도덕이 이사회를 가득 차게 만드는 오늘의 우리 사회상을 보면서 약육강식·대자병소의 사회풍조를 대표하는 그 혼란했던 춘추시대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제환공·진문공·진목공·송양공·초장왕 등 다섯 패자가 겨루는 살벌한 국제정세와 이합 집산을 능사로 하는 국내정치가들간의 암투와 비리를 보면서 비록 기원전 5세기에 일어났던 일들이지만 오늘의 우리 삶과 대차가 없음을 절감하게 된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제를 생각한다면 열국지야 말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최상의 역사서라고 여겨진다.
모든 역사서가 기념비적·교훈적 용도로 사용될 수도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역사를 직업으로 선택하지 않는 사람에게 있어 역사는 언제나 자신의 일기장처럼 실용적 용도로 사용될 수 있고 그런 효용성이 커질수록 오늘의 삶은 더욱 정화될 수 있고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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