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산책] 철거 위기 '헨리 밀러 극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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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국에선 20여년 역사의 대학로 바탕골 소극장이 폐관될 처지에 놓였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브로드웨이에서도 43가에 위치한 헨리 밀러 극장(사진)이 내년 2월 철거될 운명에 처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헨리 밀러 극장 터는 재개발 사업을 통해 57층 높이의 대규모 오피스 빌딩이 들어서게 된다.

헨리 밀러 극장은 일반적인 브로드웨이 극장의 절반에 불과한 7백석짜리 극장이다. 쇠락한 카바레의 분위기를 풍기곤 있지만 꽤나 유서 깊다. 특히 서클 인 더 스퀘어 이 극장과 함께 '아담한 브로드웨이'로 불리며 무대와 관객이 가까운 몇 안되는 극장이었다는 점을 따져 볼 때 극장의 폐관은 아쉬움이 크다.

현재 이 극장에선 뉴욕 프린지 페스티벌 출신의 뮤지컬 '유린타운(Urinetown)'이 2년째 상연 중이다. 그런데 이번 극장 철거 결정으로 유린타운도 덩달아 '퇴출' 대상에 올랐다.

문제는 '유린타운'이 가진 내용적인 참신함과 친밀한 관극 분위기를 살리기에 헨리 밀러 극장만한 공간이 없다는 사실이다. 두배나 규모가 큰 다른 극장으로 옮기자니 작품상 무리가 따르고, 5백석 이하의 오프 브로드웨이로 옮기자니 노조와의 재계약이 쉽지 않다.

제작자 중 한명인 마이클 리고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비록 극장은 상업적인 논리에 밀려 철거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창작의 연속성을 위해 비슷한 여건의 다른 극장의 설립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의식있는 브로드웨이 신세대들이 만든 이 작품이 세계 각지에서 환영받고 있다. 한국에서는 두번이나 제작됐다"며 최초의 해외 공연이었던 한국 공연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바탕골 소극장도, 헨리 밀러 극장의 품을 떠날 '유린타운'의 미래도 현재로서는 낙관할 수 없다. '유린타운'의 또 다른 이름인 '유어 인 타운(You're in town)' 처럼 이들이 계속 대학로와 브로드웨이에 머물면서 미래의 관객들에게도 기쁨을 주기를 맘속으로 바랄 뿐이다.

조용신 뮤지컬 칼럼니스트 (www.nyl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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