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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 25일 만 사임 '외교 결례'…이종섭 빠진 공관장 회의는 계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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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9일 사임했다. 지난 4일 대사로 임명된 지 25일만이다. 이 자체로 상대국인 호주에 외교적 결례가 될 여지가 큰 데다 전날까지만 해도 이 대사의 조기 귀국 이유인 방산 협력 공관장회의의 당위성을 강조하던 정부 역시 난감한 모양새가 됐다.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방위산업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에 입장해 조태열 외교부 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방위산업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에 입장해 조태열 외교부 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외교부는 이날 오전 “이 대사 본인의 강력한 사의 표명에 따라 임명권자인 대통령께 보고드려 사의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공지했다. 이 대사가 변호인을 통해 “이 대사가 조태열 외교부 장관에게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힌 지 약 2시간만이다.

이 대사의 호주 대사 임명은 내내 큰 논란이었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그를 임명한 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출국금지 대상이라는 사실이 알려졌고, 이 대사는 한 차례 공수처 조사를 받은 뒤 지난 10일 출국했다. 그리고 11일만인 지난 21일 방산 협력 공관장 회의 참석을 위해 귀국했다.

그의 임명이 총선을 앞두고 국내 정쟁의 소재가 되고, 부임 직후에 복귀 일정조차 특정하지 않은 채 조기 귀국하면서 호주 측에 결례라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호주는 공식적으로 “한국 및 이 대사와의 협력을 기대한다”는 입장을 유지했고, 물 밑에서도 이 대사와 관련한 특별한 입장을 표명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이 대사가 사임하는 전례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호주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한국 정부의 결정을 존중하며 기다렸던 셈인데, 결국 후임자를 인선할 때까지 주재 대사 공백이 길어지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됐다. 주한호주대사관은 이날 이 대사 사임과 관련한 입장을 묻는 중앙일보 질의에 "호주는 호·한 관계의 중요성을 매우 높이 평가하며, 양국 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의 모든 분야에서 차기 주호 한국 대사와 긴밀히 협력하기를 고대한다"고만 밝혔다.

이 대사의 조기 귀국 명분 마련을 위해 급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방산 협력 6개국 공관장회의를 진행한 정부 역시 수많은 비판에 시달렸다. 회의는 당초 이번 주 한 주동안 진행할 것으로 예상됐는데, 외교부는 지난 28일에야 한 주 더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이 대사가 총선 무렵까지 국내에 머물 수 있는 공적 행사를 연장한 셈인데, 다음날 곧바로 이 대사가 사임한 것이다.

이종섭 주호주 대사를 비롯한 주요 방산 6개국 대사가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방위산업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에 입장해 조태열 외교부 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종섭 주호주 대사를 비롯한 주요 방산 6개국 대사가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방위산업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에 입장해 조태열 외교부 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외교부는 전날 공관장회의 본회의 직후에도 장문의 보도자료를 내고 이례적으로 이 대사를 비롯해 6개국 대사가 참석하는 공관장회의를서울에서 개최해야 하는 필요성을 강조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방산수출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주재국과의 정무·경제관계를 한데 모아 조망하고, 정부와 기업이 힘을 모아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전략을 수립해 이행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공관장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현지생산 파트너십 활용 방안’ 세션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현재 호주 질롱시(빅토리아 주)에서 AS-21(‘레드백’) 보병전투장갑차 생산시설을 건설하는 사례”가 소개되기도 했다.

다음주에는 다른 5개국 대사는 남은 일정을 모두 소화하기로 한 것도 이런 배경이다. 이 대사가 빠졌다고 회의 일정을 취소하거나 단축하면 ‘이례적 급조 회의 아니냐’는 의심을 시인하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애초에 여러 나라의 대사들을 불러 모아 시급하게 대면 회의를 열 필요성이 컸느냐는 질문은 여전히 따라붙는다. 주요국 대사들이 주재국을 장기간 비운 데 따른 공적인 인적·물적 자원 낭비의 우려는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이 대사가 사임하고 회의에서 빠지면서 ‘주요 방산 협력국인 호주 대사가 회의 필참 인원’이라는 정부의 논리도 힘을 잃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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