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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다수당 되면 뭘 하겠다는 것인지부터 밝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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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28일 서울 경복궁역 인근에 선거운동 현수막이 설치되어 있다. 장진영 기자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28일 서울 경복궁역 인근에 선거운동 현수막이 설치되어 있다. 장진영 기자

혐오·증오에 가려 미래 청사진 안 보여

국가 미래와 민생 계획 내놓고 경쟁해야

22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어제부터 시작됐다. 선거운동 첫날 여야 모두 심판론을 들고 나왔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은 민생”이라고 말했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정권 심판은 대한민국 정상화와 민생 재건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선거에선 남을 심판하기 이전에 자신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을 먼저 유권자들에게 밝히는 게 도리다. 도대체 각 당은 원내 다수당이 되면 무슨 일을 하려 하는가. 어떤 비전과 정책을 준비하고 있는가. 특히 각 당은 자신들에게 힘을 몰아달라고 호소하지만, 우리 정치에선 특정 정당의 국회 독주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은 사례가 적잖다.

민주당은 2020년 총선에서 180석(위성정당 의석 포함)이라는 절대다수 의석을 확보했다. 당시 청와대도 민주당 차지였다. 그런 절대권력으로 민주당이 이룬 성과는 과연 뭔가. 민주당은 21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부동산 거래 전 과정에 징벌적 세금을 부과하는 세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했다. 분양가 상한제 주택에 거주 의무를 부여하는 주택법 개정안, 전세대란을 야기한 임대차 3법도 밀어붙였다. 그 결과는 사상 초유의 부동산가 폭등이었고, 정권 교체의 씨앗이 됐다.

2012년 총선에선 새누리당이 152석으로 단독 과반을 차지했다. 그 기세를 이어받아 새누리당은 그해 연말 대선까지 승리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집권 기간 내내 소통 부재와 당·청 갈등으로 잡음이 일었다. 결국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친박-비박의 계파 갈등이 폭발하면서 자멸의 길로 빠져들었다. 역설적으로 1988년 총선에서 탄생한 여소야대의 4당 체제에서 국회가 가장 역동적이고 생산적이었다는 평가가 다수다.

안타깝게도 지금 선거 구도는 상대에 대한 혐오와 증오의 프레임이 워낙 강력해 좌우의 강경파들만 득세할 뿐 합리적 중도 세력이 설 자리가 좁다. 선거가 목전이지만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3월 19~21일)에서 무당층 비율이 18%나 나온 이유다.

선거는 과거에 대한 회고적 분노만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희망을 펴는 이벤트가 돼야 한다. 지금 한국은 저출생과 고령화, 북핵 위협, 기업 경쟁력 약화, 수도권 집중화, 기후위기 등 풀어야 할 국가적 과제가 산적해 있다. 선거에서 단순히 경쟁 상대를 욕하고 비방한다고 이런 문제들이 과연 해결될 리가 있겠는가. 여야 지도부는 선거운동 기간에 다수 의석을 얻는다면 어떤 식으로 국가적 과제들을 해결할지 먼저 설득력 있는 공약들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혐오와 복수의 언어에만 매몰돼 미래는 실종된 게 지금의 총선 국면 아닌가. 어제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만큼 네거티브 경쟁이 아니라 국가 미래와 민생 정책을 내놓고 경쟁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