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세계적인 조각가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가 26일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외신들이 27일 보도했다. 세라는 현대미술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한 명으로, 녹슨 강철을 구부린 곡선 모양의 작품으로 세계 곳곳에 압도적인 규모의 작품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193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세라의 아버지는 조선소에서 배관사로 일했다. 그는 “네 살 때 거대한 유조선의 진수식을 본 기억이 평생 내 창작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됐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예일대에서 회화를 공부한 그는 1960년대 중반 유럽에 체류했다. 본래 화가를 꿈꿨으나 파리에서 조각가 콘스탄틴 브란쿠시(1876~1957)의 작품에 매료되면서 그림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고무와 네온관, 납 등의 재료로 추상 조각을 만들었고, 1970년대 들어 거대한 철판을 재료로 공간을 구성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조각가로서 그의 주된 관심은 강철이라는 재료 본연의 힘을 최대한 살리고, 작품을 통해 공간을 형성하는 데 있었다. 공업 재료인 강철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선호했다.
세라의 초기 공공미술 작품은 반대에 부딪치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게 미국 정부의 의뢰를 받아 1981년 완성한 ‘기울어진 호(Tilted Arc)’다. 뉴욕 페더럴 광장에 설치된 이 작품은 가로 길이가 36m로 녹슨 철판이 기울어진 벽처럼 휜 상태로 광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 그러나 작품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들이 청원을 냈고, 뜨거운 찬반 논쟁 끝에 1989년 철거됐다.
이런 좌절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미술계에서 인기를 더 얻어 갔다. 1986년과 2007년에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두 번 회고전을 열었고, MoMA는 그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이퀄’(2015)에 영구적인 전시 공간을 내줬다. 2005년 스페인 구겐하임 미술관에 설치된 ‘시간의 문제(The Matter of Time)’도 대표작이다.
그의 후기 대표작 중 하나는 2014년 카타르 브루크 자연보호구역에 1㎞에 걸쳐 세워진 14~16m 높이의 네 강철기둥 ‘동-서/서-동(East-West/West-East)’이다. 세라는 “내가 한 것 중에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고시언 갤러리의 래리 가고시언 회장은 27일 “세라는 조각과 그림의 정의를 바꿔 놓은 거인이었다”며 “그는 단순하면서도 숭고한 경험을 통해 우리가 보고 느끼는 방식을 변화시켰다”고 추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