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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 기술' 푹 빠진 다이슨 창업자 "한국, 기술 천시한 유럽 좇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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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다이슨 창업자인 제임스 다이슨 수석엔지니어가 18일 서울 성수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사진 다이슨

다이슨 창업자인 제임스 다이슨 수석엔지니어가 18일 서울 성수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사진 다이슨

선생님은 걸핏하면 말씀하셨다. “공부 못하면 공돌이 된다.” 이 말에 동의할 수 없었던 가난한 소년은 창고에서 뚝딱거리는 ‘영국 공돌이’가 됐고, 영국 왕실의 기사(knight)이자 대표적 기업가가 됐다. 글로벌 가전업체 다이슨 창업자이자 수석 엔지니어인 제임스 다이슨 경의 이야기다.

헤어·두피 보호 기능을 갖춘 신제품 헤어드라이어를 들고 5년 만에 방한한 다이슨 경을 지난 18일 서울 성수동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그는 “기술과 뷰티의 결합에 깊이 매료된 한국과 함께하게 되어 기쁘다”라며 “한국이 기술·제조에 대한 애정을 놓으면 안 된다”라고 당부했다.

뷰티에 진심, 서울에도 진심

다이슨은 지난 2022년 ‘뷰티 사업에 5억 파운드(약 84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했고, 이번 신제품 헤어 드라이어를 서울에서 첫 공개했다.

왜 서울인가?
“서울은 세계 뷰티의 수도로 자리잡고 있고, 어쩌면 파리를 추월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전 신제품은 파리나 뉴욕에서 런칭했지만 이제는 뷰티 영향력의 새로운 중심지인 서울을 택했다.”
한국 뷰티 시장은 경쟁도 치열한데.  
“결국 더 좋은 기술, 제품, 디자인이다. 모발과 두피에 더 좋은 신기술을 선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근 뷰티 사업에 집중하는 이유는?
“우리 기술로 최첨단 헤어 드라이어용 모터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발견했고, 이 영역을 혁신할 큰 기회를 봤다. 먼저 헤어의 세계를 충분히 이해하고 싶어서 제품 개발 전 모발과 두피에 대해 많이 연구했다. 그 결과 모발과 두피를 과열시키지 않으면서도 훌륭한 스타일과 윤기있는 머리결을 연출하는 새 제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다이슨 헤어연구소는 헤어 드라이어를 개발하기 위해 총 1625㎞ 분량의 실제 모발을 구조부터 공기역학까지 첨단 장비로 시험한다. 사진 다이슨

다이슨 헤어연구소는 헤어 드라이어를 개발하기 위해 총 1625㎞ 분량의 실제 모발을 구조부터 공기역학까지 첨단 장비로 시험한다. 사진 다이슨

다이슨은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를 만들기까지 5126번의 실패를 거친, ‘도전과 실패(trial and error)’ 정신으로 유명하다. 헤어 드라이어를 만들기 위해 헤어 연구소를 세워 전 세계 23개국 2만3000명의 모발 상태와 관리법을 조사했다고 한다. 다이슨은 엔지니어만 6000명(전 직원의 절반 이상)이 넘는 큰 조직이 됐지만, 그는 “기꺼이 실패할 마음”을 강조했다.

조직이 커졌는데 실험 정신을 어떻게 지키나?
“우리 직원들은 다이슨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점 때문에 입사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색다른 걸 시도하고, 그러면 처음엔 실패한다는 것도, 그러나 계속하면 성공한다는 것도 안다. 엔지니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들이 이 정신을 이어가도록 격려한다.”

100% 가족기업의 성공비결

제임스 다이슨 다이슨 창업자가 지난 18일 신제품 헤어 드라이어 ‘다이슨 슈퍼소닉 뉴럴’을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하며 직접 시연해보고 있다. 사진 다이슨

제임스 다이슨 다이슨 창업자가 지난 18일 신제품 헤어 드라이어 ‘다이슨 슈퍼소닉 뉴럴’을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하며 직접 시연해보고 있다. 사진 다이슨

그는 사업 초기에 자기 기업에서 쫓겨난 경험이 있다. 이사회의 결정이었다. 이후 다이슨은 기업공개(IPO) 없이 비상장사로, 일가족이 지분 100%를 소유하되 전문경영인이 경영항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중요한 사업 결정은 어떻게 내리나?
“가족 기업은 외부 투자자에게 의존하지 않기에, 상장사라면 할 수 없는 큰 위험 감수도 장기적 관점에서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기차 개발(다이슨은 2016년 전기차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가 2019년에 접었다)은 비록 상황이 변했고 상업성이 떨어져 그렇게 결정했지만, 기술력은 훌륭했다. 우리는 12만~13만 RPM(분당 회전 수) 전기 모터를 개발하는 데 무려 15년을 투자했다. 신 기술 배터리도 개발해 싱가포르에서 생산을 준비하고 있는데, 10년 이상이 걸리고 투자 회수에는 3~4년이 더 걸릴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가족 기업이기에 장기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다는 거다.”
외부 투자 유치 없이도, 기술 발전과 규모 확장이 가능한가?  
“난 한번도 외부 자금을 끌어올 필요를 못 느꼈다. 투자할 자금은 항상 충분했다. 만약 다이슨이 상장사였다면 다른 주주들의 돈으로, 몇년 간 이익을 못 내도 전기차 사업을 더 지속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난 남의 돈을 쓰기보다, 우리가 번 돈을 쓰며 일하는 게 좋다.”

한국, 제조업 소중함 알아야

그는 “성공한 나라들은 무엇 때문에 자신들이 성공했는지 잊어버렸다”라며, 영국·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제조업을 경시하고 금융·서비스에 치중하는 풍토를 지적했다. “뭔가를 만들어 돈을 벌기보다 돈이 돈을 벌다보니, 자라나는 세대가 공학·제조에 관심 갖지 않는다”는 것. 한국 상황도 비슷하다고 말하자 그는 “정말?”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발명가이자 엔지니어로서 한국에 조언한다면.
“한국, 특히 젊은이들이 실제로 무언가 만들어서 삶을 개선하는 데에 관심을 잃지 않기 바란다. 지금 걱정하는 문제는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국제 엔지니어링·디자인 공모전)는 노인·환자·약자를 돕는 것과 에너지 절약의 두 가지 부문에서 젊은이들의 많은 아이디어를 내는데, 이것들은 결국 엔지니어링이다. 이런 문제는 그레타 툰베리 같은 활동가의 발언이 아니라, 공학·과학·제조 전문가가 해결할 수 있다.”
최근 다이슨이 AI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고용을 늘린다던데. 
“다이슨 모터와 로봇 청소기에는 전부터 머신러닝 등 AI의 초기 단계가 적용돼 왔다. 지금은 런던 연구소에서 우리만의 방식으로 AI를 개발하고 있다.”

월급 주는 다이슨 공대, 다이슨 분위기도 바꿔

지난해 다이슨 기술공과대학 졸업식에 제임스 다이슨 창업자가 졸업생들과 함께 축하하고 있다. 사진 다이슨

지난해 다이슨 기술공과대학 졸업식에 제임스 다이슨 창업자가 졸업생들과 함께 축하하고 있다. 사진 다이슨

다이슨은 2017년 영국 정부의 공식 인가를 받아 4년제 다이슨기술공과대학(DIET)를 설립했다. 한 해 40명이 입학해 기숙사 생활하며, 등록금 0원에 도리어 월급을 받는다. 그는 “대학에 다니기 위해 학생들이 엄청난 빚을 지는 현실에 경악했다”라며 “우리 학생들은 세계에서 유일한 ‘세금 내는 학생’”이라고 말했다. 졸업 후 다이슨에 입사할 의무는 없지만, 300여 명 중 대다수가 회사에 남았다고 한다.

어떤 교육 과정인가?

“주 3일 동안 다이슨의 과학자· 엔지니어와 함께 배터리, 헤어 제품, 진공청소기, 로봇 등을 발명한다. 세계 최고라고 말할 순 없지만, 최소한 뭔가 만들어 작동시키고 생산까지 하는 사람들에게 배우는 거다. 주 2일은 공학·과학 이론을 배운다. 실무·이론을 혼합해 1년 중 48주를 배우므로 힘들다. 하지만 졸업하면 석사 엔지니어와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다이슨 공과 대학이 회사 다이슨에도 영향을 주나?
“숙련된 엔지니어는 ‘내가 방법을 다 안다’라고 생각하지만 젊은 엔지니어는 다른 방식으로 해보고 싶어하니, 경험과 도전의 아주 좋은 조합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 이름이 발명품에 기재되므로,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발명을 한다.”
다이슨이 18일 출시한 슈퍼소닉 뉴럴 헤어드라이어를 출시했다. 두피와의 거리를 측정해, 두피에 닿는 온도가 55도로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바람의 온도를 자동 조절한다. 사진 다이슨

다이슨이 18일 출시한 슈퍼소닉 뉴럴 헤어드라이어를 출시했다. 두피와의 거리를 측정해, 두피에 닿는 온도가 55도로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바람의 온도를 자동 조절한다. 사진 다이슨

’브랜드’가 아닌 ‘프로덕트’

다이슨은 ‘가전계의 애플’에 비견될 정도로 강한 브랜드 파워를 지녔다. 하지만 정작 창업자인 다이슨 경은 ‘브랜드’라는 말을 싫어한다고 했다.

브랜딩에 집중하지 않으면서 브랜드를 성장시킨 비결은?
“중요한 건 제품이다. 브랜드는 제품에서 나온다. 고객들은 우리 제품이 얼마나 잘 작동하며, 어떤 기능이 있으며, 그게 자기 삶을 개선하는가를 본다. 그런데 제품보다 ‘남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나’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긴다. 사람도 그렇지 않나. 중요한 건 ‘남이나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나’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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