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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에바 존의 문화산책

프랑스도 앓고 있는 ‘의사 부족’이라는 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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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에바 존 한국 프랑스학교 사서

에바 존 한국 프랑스학교 사서

집에서 가까운 종합병원에 이번 달 예약이 잡혀 있었다. 의료 파업으로 혹시 예약이 취소되지는 않을까 염려가 됐다. 한편으로는 의사 파업으로 인해 전에는 미처 몰랐던 한국 의료체계의 현실이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5년 전에 한국에 이사 온 나는 한국 의료체계가 원활하고 효율적이라고 항상 생각했다. 대개는 간단하게 진료 예약을 할 수 있고, 가끔 예약 없이도 치과나 안과를 찾는다. 예약을 하면 보통 제시간에 의사를 만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의사의 진료를 받으려면 몇 주, 심지어 몇 달 후에나 예약이 가능하다. 그러고 나서 병원에 가도 오랜 시간을 대기실에서 보내는 일이 다반사다.

영토 87%에서 의사 부족 현상
젊은 의사 열정도 과거와 달라
유럽국가 의사 수입 법안 통과

2019년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에서 의사와 간호사 등이 ‘환자들이 위험하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보건의료 인력 확충 등을 요구하며 파업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2019년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에서 의사와 간호사 등이 ‘환자들이 위험하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보건의료 인력 확충 등을 요구하며 파업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물론 이는 서울에 거주하며, 아직까지는 건강 검진이나 사소한 처방 정도만 필요했던 환자 한 사람의 관점일 뿐이다. 서울 외 지역은 의사 부족에 시달리고(한국의 인구당 의사 수는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적다), 인구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만큼 상황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심각한 프랑스의 ‘의료 사막’

프랑스의 경우 수십 년 전부터 이른바 ‘의료 사막(medical deserts)’ 문제를 겪어 왔다. 프랑스 영토에서 약 87%가 의사 부족을 겪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의사가 부족하기 때문에 일반 병원이나 응급실이나 할 것 없이 하염없이 순서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는 여러 유럽 국가에서 흔하게 겪는 고충이고, 지난 팬데믹 기간에 이러한 현실이 낱낱이 드러났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특히 몇몇 지역에서는 은퇴할 의사들을 대체할 인력을 찾기가 어렵다. 1990년대 말 프랑스 정부에서는 57세가 되는 의사들에게 퇴직금을 주어 조기 퇴직시켰다. 오늘날에는 공공기관들이 은퇴가 가까워지는 의사들을 잡아두려고 뭐든지 할 태세다.

프랑스 의사들의 세대 차이

한 가지 중요한 문제는 의료 인구의 혁명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젊은 의사들이 전원이나 시골에 정착하려고 할까? ‘페이 닥터’(월급을 받고 일하는 의사) 근무를 선호할까, 아니면 개인병원 개업을 선호할까?

그러나 한국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역시 의사 숫자만이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프랑스의 젊은 의사들은 여러 이유로 기성세대 의사들만큼 장시간 일에 전념하지 않는다. 많은 젊은이가 의사라는 직업을 노골적으로 거부한다. 근무 시간이 너무 많고, 의사가 되기까지 너무 오래 걸리고, 행정 업무가 너무 많고, 개업하기까지 겪는 과정이 너무 번거롭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일각에서는 의사들의 업무 몇 가지를 다른 숙련된 의료 전문가들에게 넘겨서 의사들의 진료 시간을 확보해 주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의견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데다 많은 의사가 이를 자신들의 직업적 특권을 침해하는 조치라고 생각해 반대한다.

직업적 특권 문제는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한국 의사들 역시 비슷하다. 의대생 증원 계획은 원칙적으로는 전공의들의 근무 시간을 줄이고,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파업에 나선 의사들은 의대 증원이 성형외과나 피부과 등 인기가 많고 수익성이 높은 일부 학과에나 효과가 있을 뿐, 의사가 부족한 소아과나 응급실은 여전히 인력 부족난을 겪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우려하는 문제가 경쟁 심화 및 수입 감소일 것이라는 의혹은 배제하기 어렵다.

외국 의사 수입 나선 프랑스

프랑스에서도 2020년까지 소위 ‘정원 제한(numerus clausus)’으로 해마다 수련 과정을 밟는 전공의 숫자를 제한했다. 2019년 정부는 정원 제한을 풀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2019년의 제한 해제 효과가 2030년까지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프랑스의 일반의 숫자는 2021년에서 2026년 사이에 더욱 감소하다가 2030년에야 현재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프랑스 정부는 유럽 내 다른 나라에서 의대 과정을 밟은 의사들을 상대로 프랑스 내 의료 시설 부족 지역에서 2년을 근무하는 조건으로 프랑스 내 취업을 허가하는 내용의 법안을 지난해 11월 통과시켰다. 프랑스 총리는 특사를 파견해 외국인 의사들을 모집할 계획도 갖고 있다. 이미 프랑스에는 EU 외 국가에서 의사 면허를 따고 약 20년간 온갖 불안정한 대우를 감수하며 일해 온 개업의들이 4000명이나 있다. 정부는 이제 이들을 합법화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리 인기 있는 의견은 아니겠지만, 한국 또한 인구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을 생각할 때 외국인 의사를 수용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특정 분과의 급여 인상이나 의대생 증원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의사 부족 문제는 이런 처방보다 한층 폭넓고 근본적인 정책 결단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에바 존 한국 프랑스학교 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