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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혜리의 시선

'정치재해' 보상법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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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국혁신당의 비례대표인 조국 대표(가운데)와 박은정 전 검사(왼쪽), 차규근 전 법무부 출입국ㆍ외국인정책본부장(오른쪽). 정치보복을 앞세워 지지율을 얻고 있는데, 이들 모두 당선권이다. 연합뉴스

조국혁신당의 비례대표인 조국 대표(가운데)와 박은정 전 검사(왼쪽), 차규근 전 법무부 출입국ㆍ외국인정책본부장(오른쪽). 정치보복을 앞세워 지지율을 얻고 있는데, 이들 모두 당선권이다. 연합뉴스

총선이 2주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 열기가 고조되는 게 아니라 국민의 혈압만 치솟고 있다. 각 당은 요동치는 지지율 그래프를 보면서 차지할 의석수와 그로 인한 정치적 역학관계 계산에 여념이 없겠지만, 대다수 국민은 이제 아예 총선 결과를 궁금해하지도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정확히는, 기대를 접었다.

여야 각 정당의 대진표를 보고 있자면 대략 난감이다. 투표하든 말든, 무슨 당을 선택하든 결국 사리사욕·권력욕에 눈 멀어 자기 당 보스의 아부꾼 노릇을 자청하며 충성 경쟁할 사람만 국회에 가득 채워질 게 뻔해서다. 한마디로 표 줄 곳이 없다. 민생에 눈 감은 사상 최악의 21대 국회를 견디고, 거대 양당의 수준 미달 공천 파동과 저질 막말 경쟁을 겨우 참아냈더니 저 앞에 놓인 게 역대급 퇴행적 국회라니. 게다가 이들이 막대한 국민 세금을 받아가며 반드시 저지르고야 말 온갖 분탕질을 생각하면 화가 나다 못해 총선 이후가 정말 두렵다.

표 줄 곳 없는 역대 최악 22대 국회
조국·정치 검사의 보복정치 임박
'정치판 중처법' 도입하고픈 심정

안 그런가. 어느 당이 몇 석을 가져가는지와 무관하게 이미 안정적 당선권에 든 각 당 비례대표·지역구 후보의 면면만 봐도 22대 국회에서 펼쳐질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 국회에 입성한 정치 검사들의 보복 정치, 패싸움 정치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나라를 두 동강 낸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윤석열 정부에 대한 정치 보복을 내걸고 창당한 조국혁신당은 현재 지지율(22%)대로라면 지역구 한석 없이 무려 12석을 확보한다. 비례대표 명단엔 2심 징역 2년을 받은 조 전 장관 본인(2번)은 물론 '윤석열 찍어내기 감찰'로 해임된 박은정 전 부장 검사(1번), 울산시장 선거 개입으로 1심에서 징역형 받은 검수완박 주역 황운하 의원(8번) 등이 포함돼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방탄 국회 운영에 지칠 대로 지쳤는데 아예 복수심에 사로잡힌 범죄자들이 모인 이 기묘한 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어떤 난장을 벌일지 벌써 한숨만 나온다. 내놓겠다는 1호 법안이 '한동훈 특검법'이니 할 말 다했다. 여기에 현직 검사 신분으로 조국 북 콘서트에 등장해 윤석열 정부 비판을 쏟아냈던 이성윤 전주시을 후보 등 민주당의 친문 검사 출신 4인까지 가세하면 정말 목불인견이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9일 법원 허락없이 본인 재판은 불출석한채 원창묵, 송기헌 후보와 함께 원주 중앙시장을 방문했다. 22대 국회는 21대보다 더한 방탄 국회가 될 전망이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9일 법원 허락없이 본인 재판은 불출석한채 원창묵, 송기헌 후보와 함께 원주 중앙시장을 방문했다. 22대 국회는 21대보다 더한 방탄 국회가 될 전망이다. 뉴스1

지난 2019년 조국 사태는 우리 사회에 공정과 정의를 다시 세우고, 내로남불을 일삼는 위선적 인물을 정치권에서 솎아내는 계기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민심의 심판과 사법적 판단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인물들이 기존의 몰상식에 더해 몰염치까지 장착하고 막강한 입법 권력을 쥐게 되다니 기가 막히다.

여기엔 윤석열 대통령과 집권당인 국민의힘의 책임이 적지 않다. 표 갈 곳 없다는 고민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콘크리트 보수층마저 선뜻 찍기를 저어할 만큼 오만한 국정 운영이 이어지는데 당은 대통령 눈치 보느라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다. 공천이라도 잘했으면 어느 정도 만회했겠지만 이마저도 혁신과는 거리가 먼 구태 그 자체였다.

명분 없는 의원 꿔주기로 탄생시킨 국민의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는 부실 검증 논란에 한 차례 대대적 조정을 했는데도 실망스럽기는 매한가지다. 동교동계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조카인 한지아 비대위원(11번), 그리고 조정 끝에 13번에서 당선권(16석) 밖(21번)으로 밀리긴 했지만 이명박 정부 법무비서관 강훈 변호사의 딸인 강세원 전 대통령실 행정관을 공천해 불필요한 '(큰)아빠 찬스' 논란을 만들었다. 이러니 정치적 자신이라고는 후광밖에 보이지 않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위인 곽상언 민주당 종로 후보를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다. 이 시대 젊은이들이 그렇게 기회의 공정을 요구해왔는데 22대 국회는 여야가 합심해 세습 권력의 힘만 보여주게 될 판이다.

지역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국민의힘은 당초 약속과 달리 현역 85%에 공천을 몰아줬다. 그 과정에서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마구잡이 돌려막기 공천을 했다. 이러니 '비명횡사'(친이재명 아니면 공천에서 살아남지 못함)로 벼락공천돼 본인 지역구 투표권조차 없는 한민수 민주당 강북을 후보의 흠을 부각하지도 못한다.

이런 의문이 든다. 민생 법안은 외면하고 맹목적 추종이거나 발목잡기만 일삼는 국회의원이 왜 필요한가. 무엇보다 국민은 왜 이걸 지켜보느라 스트레스받아야 하나. 이쯤 되면 웬만한 산업재해는 저리 가라 할만한 '정치재해'를 온 국민이 겪는 셈인데, 정치판 중대재해 처벌법이라도 만들어 수준 미달 정치인들이 국민 뒷목 잡게 할 때마다 당 대표에게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원의 벌금을 물렸으면 좋겠다. 아니면 선거 치를 돈으로 국민에게 정치재해 보험금이라도 주든가. 너무 답답하니 이런 헛된 망상까지 든다.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