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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납부금 4000원, 여권발급비 3000원↓ …‘그림자 조세’ 2조원 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해외로 나갈 때마다 정부에 내는 돈이 있다. 출국납부금이다. 항공권 가격에 세금으로 뭉뚱그려 표시되다 보니 얼만지도 모르게 냈던 출국납부금은 1만1000원이다. 영화표 가격의 3%는 영화발전기금으로 들어간다. 이처럼 은근슬쩍 소비자에게 부과하던 각종 부담금이 없어지거나 줄어든다.

32개 부담금 폐지·감면

27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부담금 정비 및 관리체계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부담금은 공익사업 등을 위해 운영하는 것으로, 세금처럼 피해갈 수 없다 보니 ‘그림자 조세’로 불려왔다. 정부는 현재 운영 중인 91개 부담금 중 18개 부담금을 폐지하고, 14개 부담금은 금액을 감면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자유홀에서 열린 제2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자유홀에서 열린 제2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2022년 말 기준 부담금 규모는 22조4000억원에 달한다. 2002년 부담금관리기본법을 도입한 이후 부담금을 전면 정비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이번 개편으로 부담금 2조원 감소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김윤상 기획재정부 2차관은 “국민들이 모르면서 납부하고 있던 부담금을 관행적으로 거두고 있었는데 이런 부분을 과감하게 정비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정비 부담금 중 하나는 출국납부금이다. 항공요금에 포함된 출국납부금 1만1000원에서 7000원으로 낮춘다. 출국납부금 면제 대상은 2세 미만에서 12세 미만으로 확대한다. 초등학생 자녀가 2명인 4인가구가 해외여행을 간다고 가정하면, 출국납부금이 현행 4만4000원에서 1만4000원으로 3만원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전기요금도 줄어든다

전기요금에 자동으로 따라붙는 전력산업기금 부담금은 전기요금의 3.7%에서 2.7%까지 인하한다. 올해 7월 0.5%포인트, 1년 뒤 추가로 0.5%포인트 단계적으로 줄이는 식이다. 전력기금 부담금은 전력산업 기반 조성을 위해 걷는 돈으로, 올해만 3조2000억원 징수가 예정돼있었다. 최근 전기요금이 인상됨에 따라 부담금도 함께 늘어났다. 정부는 4인가구 평균 연 8000원, 영세 제조업체 기준 연 62만원의 전기요금이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여권을 발급할 때 붙는 국제교류기여금은 10년짜리 여권 1만5000원, 5년 여권 1만2000원에서 1만2000원(10년), 9000원(5년)으로 3000원씩 감면한다. 영화표를 살 때 티켓 가격에 포함되는 입장권 부과금은 폐지한다. 입장권 가액의 3%를 영화 산업 진흥을 위해 부담금으로 부과해왔는데 앞으론 이를 재정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최근 영화표 가격이 1만5000원까지 올랐음을 고려하면 450원가량 줄어드는 셈이다. 이 외에도 껌의 폐기물부담금(판매가의 1.8%) 등 합리성이 부족한 부담금 상당수가 정비 대상에 포함됐다.

영화 가격 싸진다…정부 “협의 중”

다만 부담금 개편이 실제 소비자 가격 부담 완화로 이어지려면 민간기업이 호응해야 한다. 출국납부금이나 전력산업기금 부담금 등은 정부나 공공기관이 즉각 가격 반영해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영화 입장권 부과금 등 대부분은 기업이 판매하고 그중에 일부를 납부하는 구조라 가격 결정권이 기업에 있다. 예컨대 영화관 결정에 따라 관람료의 3%(약 500원)인 부담금 폐지를 가격에 반영할 수 있다. 정부는 가격이 하락할 수 있게끔 관련 업체들과 협의를 진행한다.

32개 부담금 정비 대상 중 소비자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항목도 상당수다. 분양사업자에게 부과하던 학교용지부담금(분양가격 0.8%), 여객선 사업자에게 부과하던 부담금(여객운임액 2.9%) 폐지 등 혜택을 받는 건 대부분 기업이다. 정부는 업계와 협의를 적극 진행해 소비자 부담 완화로 이어지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영화관 입장권 부담금 경감이 하루빨리 영화 요금 인하로 이어지고, 학교용지 부담금 폐지가 분양가 인하로 바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제계는 일제히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법정부담금은 민간 경제활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며 “이번 개편안이 국회를 차질 없이 통과하면 국민과 기업은 불합리한 준조세 부담을 덜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주택협회와 대한주택건설협회도 학교용지부담금을 놓고 소송전이 벌어지는 등 사회적 비용을 고려했을 때 폐지 추진이 시의적절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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