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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매미 때 산더미 파도, 오륙도등대 지켰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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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부산 영도 등대를 배경하고 선 3대와 4대 등대지기 김대현(오른쪽)·성언 부자. [사진 김대현]

부산 영도 등대를 배경하고 선 3대와 4대 등대지기 김대현(오른쪽)·성언 부자. [사진 김대현]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 한겨울에 거센 파도….’ 등대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랫말이다. 등대는 언제라도 만나고 싶은 그리움의 대상이다. 이런 등대에서 4대째 근무하는 공무원 가족이 있다.

1987년부터 ‘등대지기’로 일하고 있는 김대현(58·부산시 영도구 청학동) 부산지방해양수산청 해양교통시설 부산항 관리센터장이 주인공이다. 그의 둘째 아들 성언(28)씨도 지난 1월 해양수산부 기술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 다음 달부터 마산지방해양수산청에서 항로표지관리원으로 근무를 시작한다.

김대현 센터장은 맞벌이 부부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두 아들은 어린 시절 아빠가 일하는 등대에서 자주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가 일하는 동안 아이들은 얼어붙은 달그림자가 물결 위에 차는 걸 등대에서 보며 잠이 들곤 했다.

해방 직후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거쳐 김 센터장까지 받든 등대지기 ‘업’은 이제 4대째 이어지게 됐다. 김 센터장 할아버지는 1946년부터, 아버지는 1967년부터 등대 지키는 일을 했다.

김 센터장은 26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아들은 대학에서 항공정비학을 전공한 뒤 해군 부사관으로 6년간 복역하다 지난해 8월 제대했다”고 말했다. 성언씨는 해군에서 항공단 헬기를 관리했다고 한다. 김 센터장은 이후 공무원을 희망하는 아들에게 “이왕에 공무원이 될 거면 아빠가 하는 일에도 관심을 갖고, 가능하면 (등대지기) 대를 이어줬으면 좋겠다”고 넌지시 권했다. 성언씨는 군에서 나온 지 5개월여 만에 치른 해양수산부 기술직 시험에 합격했다.

김 센터장은 “나도 어린 시절 등대에서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본 기억이 있다”며 “지금도 일을 하다 힘들 때면 아버지 모습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곤 한다”고 전했다.

등대지기 일은 힘들 때가 많다고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2003년 태풍 ‘매미’가 왔을 때를 꼽았다. 그는 “당시 부산 오륙도 등대에서 근무했는데 강한 바람에 파도가 섬 전체를 집어삼킬 듯했고, 통신마저 끊겨 무서웠다”고 했다. 그는 “당시 오륙도까지 배편이 없어 남구 용호동에서 낚싯배를 얻어타고 출근했고, 기상이 안 좋을 땐 며칠씩 출근하지 못했다”고 했다. 또 악천후 때문에 섬에 갇혀 며칠씩 나오지 못하거나, 중요한 경조사를 놓치는 때도 잦았다. 하지만 ‘바다를 지킨다’는 생각으로 견뎠다고 한다. 직장 후배가 된 아들에게 김 센터장은 “바다 안전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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