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싯배 타고 출퇴근, 경조사도 못갔다”…4대째 등대지기 가족 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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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부산 영도 등대에서 김대현 부산지방해양수산청 해양교통시설 부산항 관리센터장이 아들 김성언씨와 마주보며 웃고 있다. 김 센터장의 조부와 부친도 등대지기였다. 김성언씨도 최근 해양수산부 기술직 시험에 합격해 4대째 대를 이었다. 사진 김대현 센터장

지난 15일 부산 영도 등대에서 김대현 부산지방해양수산청 해양교통시설 부산항 관리센터장이 아들 김성언씨와 마주보며 웃고 있다. 김 센터장의 조부와 부친도 등대지기였다. 김성언씨도 최근 해양수산부 기술직 시험에 합격해 4대째 대를 이었다. 사진 김대현 센터장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 한겨울에 거센 파도….' 등대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랫말이다. 등대는 언제라도 만나고 싶은 그리움의 대상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낭만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등대에서 4대째 근무하는 공무원 가족이 있다.

1987년 5월부터 올해로 39년째 ‘등대지기’로 일하고 있는 김대현(58·부산시 영도구 청학동) 부산지방해양수산청 해양교통시설 부산항 관리센터장이 주인공이다. 그의 둘째 아들 성언(28)씨도 지난 1월 해양수산부 기술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성언씨는 해양수산인재개발원에서 이달 말까지 3주간 직무 교육을 받는다. 이후 다음 달부터 마산지방해양수산청에서 항로표지관리원으로 근무를 시작한다. 등대 등 항로표지 관리·설계 업무를 담당한다.

김대현 센터장은 맞벌이 부부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인 성언씨는 어린 시절 아빠가 일하는 등대에 자주 왔다. 두 아들은 아빠의 모습과 바다를 지켜보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가 일하는 동안 아이들은 얼어붙은 달 그림자가 물결 위에 자는 걸 등대에서 보며 잠이 들곤 했다.

해방 직후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거쳐 김 센터장까지 받든 등대지기 ‘업’은 이제 4대째 이어지게 됐다. 김 센터장 할아버지는 1946년부터, 아버지는 1967년부터 등대 지키는 일을 했다. '등대지기'곡의 노랫말 대로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이 대대로 이어지는 듯한 분위기다.

군인이던 아들, 첫 시험에 곧장 합격했다

김대현 센터장의 부친으로, 등대지기 일을 한 김창웅(사진 가운데) 주무관의 젊은 시절 모습. 사진 부산지방해양수산청

김대현 센터장의 부친으로, 등대지기 일을 한 김창웅(사진 가운데) 주무관의 젊은 시절 모습. 사진 부산지방해양수산청

김 센터장은 26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아들은 대학에서 항공정비학을 전공한 뒤 해군 부사관으로 6년간 복역하다 지난해 8월 제대했다"고 말했다. 성언씨는 해군에서 항공단 헬기를 관리했다고 한다. 김 센터장은 이후 공무원을 희망하는 아들에게 “이왕에 공무원이 될 거면 아빠가 하는 일에도 관심을 갖고, 가능하면 (등대지기) 대를 이어줬으면 좋겠다”고 넌지시 권했다.

김 센터장은 아들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조심스럽게 제안했다고 한다. 성언씨는 군에서 나온 지 5개월여 만에 치른 해양수산부 기술직 시험에 합격했다. 이에 김 센터장은 “공무원 시험에 이렇게 빨리 합격할 줄 몰랐다”며 흐뭇해했다.

“40년 보살핀 바다, 아들도 잘 지켜주길”

그는 “나도 어린 시절 등대에서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본 기억이 있다”며 "지금도 일을 하다 힘들 때면 아버지 모습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곤 한다"고 전했다.

등대지기 일은 힘들 때가 많다고 한다. 태풍이나 폭풍우가 몰아칠 때는 어선의 안전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2003년 태풍 '매미'가 왔을 때를 꼽았다. 김 센터장은 “당시 부산 오륙도 등대에서 근무했는데 강한 바람에 파도가 섬 전체를 집어삼킬 듯했고, 통신마저 끊겨 무서웠다”고 했다.

그는 “당시 오륙도까지 배편이 없어 남구 용호동에서 낚싯배를 얻어타고 출근했고, 기상이 안 좋을 땐 며칠씩 출근하지 못했다”고 했다. 또 악천후 때문에 섬에 갇혀 며칠씩 나오지 못하거나, 중요한 경조사를 놓치는 때도 잦았다. 하지만 ‘바다를 지킨다’는 생각으로 견뎠다고 한다. 김 센터장은 “안개가 몰려오는 등 기상이 급변할 땐 등대에서 음량 신호를 크게 울려야 한다. GPS가 없는 소형선은 오직 이 소리에 의지해 방위와 거리를 가늠한다”고 설명했다.

부산 강서구 가덕도 최남단에 위치한 가덕도등대. 왼쪽의 옛 등대가 대한제국 말기인 1909년 12월에 처음 불을 밝힌 역사적인 건축물이다. 송봉근 기자

부산 강서구 가덕도 최남단에 위치한 가덕도등대. 왼쪽의 옛 등대가 대한제국 말기인 1909년 12월에 처음 불을 밝힌 역사적인 건축물이다. 송봉근 기자

직장 후배가 된 아들에게 김 센터장은 “군에 있었으니 윗사람과 아랫사람 간 예의범절은 잘 알 것이라 믿는다. 바다 안전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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